
2013년 봄, 새만화책에서 출간된 류승희의 '나라의 숲에는'은 친구 사이인 네 명의 여자들이 즉흥적으로 떠난 일본 여행을 그린 만화다. 고등학교 때 같은 교실에서 웃고 떠들던 사이지만, 삼십이 된 지금 그녀들의 처지는 각각 다르다. 그녀들은 수정의 생일 모임에서 여름 휴가에 여행을 가자고 의기투합하게 된다. 수정의 독백처럼, '몇 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든' 사이였는데, 드디어 14년 만에, 서른이 되어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첫날 서울에서 오사카까지 가는 일정은 수정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다른 친구들처럼 살기 싫어 배낭여행을 다니던 그녀는 어느새 삼십이 되었다. 생일 모임에서 친구 혜진이 결혼 날짜를 잡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자연스럽게 결혼이 화제가 된다. 수정은 이게 영 불편하다. "그래, 서른까지 연애 한 번 못 해 본 건 나뿐이지…." 둘째 날에는 교토로 간다. 회사를 관두고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혜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와 싸우고 여행에 와서인지 뭔가 마음이 불편하다. 셋째 날에는 고베로 간다. 시점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화를 그리는 미영으로 이동한다. 자연스럽게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타는 자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친구들과 보낸 이틀 동안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기분이다. 여행 3일째, 그만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느낀다. 유명한 곳을 찾아다니는 여행 동선도 마음에 들지 않고. 넷째 날은 나라에 간다. 대학을 졸업하고부터 계속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정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해외여행을 처음 해 본 그녀의 마음도 뭔가 불편하다. '1, 2년이면 끝날 줄 알았던 수험 생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남은 건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여행 한 번 못해 본 촌스러운 자신뿐'이라고 생각한다. 수정은 쪽지를 남기고 아침에 나가, 세 명이 함께 여행을 한다.
첫날부터 넷째 날까지. 여행의 동선을 따라 각기 다른 삶을 살고 있던 서른살 그녀들의 삶을 보여준다. 14년 만에 여행을 떠난 친구들은 생각보다 더 어색하고, 마음이 맞지 않는다. 마음에 품은 갈등과 고민들도 쉬 털어놓지 못한다. 만화는 이 모든 걸 그저 보여주기만 한다. 그녀들의 사이에서 갈등이 폭발하지도 않고, 명쾌하게 해결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녀들은 나라에서 아무 목적 없이 걷다가 멋진 숲을 만난 것처럼, 여행을 통해 서로를 인정하고 자신을 인정한다.
'나라의 숲에는'은 여행만화가 아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멋진 곳으로 떠나지도 않고, 숨겨진 정보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이 만화의 진짜 미덕은 기대할 만한 상투성과 생생한 그녀들의 갈등을 독자들이 함께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매일 이동되는 시점은 개인의 심정을 독백으로 드러내고, 친구들과 대화는 그 심정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을 느끼게 한다. 그러면서 딱 우리 일상처럼 얽힌 감정의 타래들을 보여준다. 미세한 감정선을 따라가면, 그 안에서 나를 보게 된다. 그게 이 만화의 미덕이다. 길을 걷다 보면 문득 숲을 만나는 것처럼, 여행의 마지막 밤을 난데없이 욕실청소를 하며 보내는 것처럼.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