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한 여자가 있다/습지를 걸어온 퉁퉁 불은 고무신을 신고/3미터쯤 껑충한 갈대로 서 있다./잎사귀 전부의 사유가/한번 환하게 터지는 9월쯤/꽃밭이었던 다년생초의 사랑/안쪽으로 벼까락처럼 말리고 나서/난청이 된 여자./바람 소리 못 알아듣고/아무 때나 몸을 떨었다.//내 안에 바람에 홀린 한 여자가 있다./한밤중 문 열고 나갔다가/이적지 돌아오지 않는/바람, 그 쪽만 바라보다/오십을 넘긴 한 여자가 있다./아직도 세상을/철없는 힘으로 살아가는/바람 냄새 풍기는 한 여자가 있다 최문자(1943~) '자화상'(2003)
화자의 몸에 여성과 갈대가 공존한다. 액자식 구조로 된 이 시는 '갈대의 몸'에 '안쪽으로 벼까락처럼 몸을 말리고 나서 난청이 되어 바람 소리 못 알아듣고 아무 때나 몸을 떠는' '한 여자'가 있고, '한 여자의 몸'에 '바람에 홀려 집을 나갔다가 오지 않는 오십을 넘긴' '한 여자'가 또 있다. 여성의 몸과 갈대는 바람이라는 대항적 대립 속에서 원초적인 생명성 그리고 연약함을 의미한다. 시인은 여성과 자연의 합일을 통해 원초적 본능, 상실된 개체, 존재의 불안을 보여주려고 한다. 화자의 자기 개방은 '내 안에 한 여자'가 '습지를 걸어온 퉁퉁 불은 고무신을 신은 3미터쯤 되는 위태로운 갈대'로 출현한다. 그리고 여성과 갈대 사이에 "잎사귀 전부의 사유가/한번 환하게 터지는 9월쯤/꽃밭이었던 다년생초의 사랑"이라는 '원초적 본능을 회복'시키고, "안쪽으로 벼까락처럼 말리고 나서/난청이 된 여자./바람 소리 못 알아듣고/아무 때나 몸을 떨었다."라는 '상실된 개체의 복원'을 시도하며, "아직도 세상을/철없는 힘으로 살아가는/바람 냄새 풍기는 한 여자가 있다"라고 '존재 자체의 불완전성'을 드러낸다. 시인이 자신의 몸을 열고 보여주는 이러한 시선이야말로 숨겨진 여성의 정체를 탐색하는 비밀스러운 도구가 된다. 이렇게 '온몸이 사유로서, 아무 때나 몸을 떠는, 바람 냄새 풍기는' 공간으로 집약되는 여성의 몸은 자아 정체성을 회복하는 성스러운 장소로서 몸의 열락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