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미술계 빅바이어로 작품구매땐 권력 더 커져
문화예술인들 어정쩡한 미소 이유 이젠 짐작
경인일보 문화부는 지난 주말 가칭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명칭을 둘러싼 논란을 보도했다. 기부채납 문화시설에 기업의 상품명을 포함시키는 게 맞느냐는 문제 제기였다. 사실 논란과 시비가 인 지는 꽤 됐다. 올해 초 문화부 데스크를 맡아 지역 문화계 인사들과 안면을 트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귀에 포착된 정보였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시비와 논란의 내용은 의미심장한데 정식으로 문제삼는 인사들이 없었다. 뒷담화 수준은 모를까 공론장에 나서기는 곤란하다 했다. 애매한 태도와 어정쩡한 미소의 배경, 궁금했다.
가칭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이름을 둘러싼 시비는 간단하다. 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이 수원시에 수천세대의 아파트를 짓는다. 공사가 가능하려면 인허가권과 용적률 조정권을 쥔 수원시의 협조가 절대적이다. 공사가 완료되면 기업은 엄청난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 시가 당당하게 요구한다. 우리가 이익 실현을 허가한다면 당신들은 수원시와 수원시민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현산은 미술관을 지어 수원시에 기부채납하기로 한다. 미술관을 지어 헌납하더라도 손해보는 장사가 아닌 것은 현산도 수원시도 알기 때문에 가능한 행위, 심하게 표현하면 상호이익을 교환하는 거래였다.
기부채납의 정의와 의미가 명쾌하기 때문에 미술관 이름을 둘러싼 시비는 당연하고 문제해결도 어렵지 않다. 수원시 관계자들의 해명을 간단히 요약하면 '기업의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배려'다. 기부와 기부채납을 헛갈리고 있다. 현산이 아무 조건없이 순수한 자기 자본으로 미술관을 지어 수원시에 기부한다면 '정세영미술관'이라 명명한다 해서 누가 반대할까. 기부채납은 기부와 거리가 멀어도 아주 멀다. 현산의 아파트 브랜드 '아이파크'가 이름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 현산 설립자 정세영 회장 컬렉션만을 위한 갤러리를 상주시킬 명분도 없다.
막내 기자가 기부채납의 다른 사례를 취재했다. LH는 판교신도시 개발이익으로 성남시에 기부채납한 400억원대 판교도서관과 판교청소년수련원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KT&G는 대구시에 160억원 규모의 부지와 공장건물을 문화예술공간으로 기부채납했다. KT&G측은 "기업이 수익을 얻은 공간을 시민에게 의무적으로 기부채납한 걸 두고 모범적이라는 평가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비보도를 요청했단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명칭 논란의 해법은 나와 있다. 현산이 아무런 흔적없이 약속대로 미술관을 수원시민에게 인계하면 그걸로 끝이다.
문화부 데스크를 담당한 지 1년 가까이다. 이제 짐작할 수 있다. 미술관 명칭에 문제있다 뒷담화하면서도 공론장에선 침묵해야 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심정 말이다. 그들의 애매한 태도와 어정쩡한 미소의 의미를 이제는 알겠다. 미술관 이름 논란에서 정작 가슴 아픈 건 이 대목이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지역 미술계의 빅 바이어다. 미술관이 작품을 구매하기 시작하면 그 권력은 더욱 커진다. 작품 전시를 위해 미술관 대관을 희망하는 예술인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미술관과 직접 관련이 없어도 시에서 문화예술 지원금을 받았거나 받아야 할 개인이나 단체도 많을 것이다. 문화행정에서 문화예술인들은 전적으로 '을'이다. 앞장서 행정과 척을 지면 결과의 쓴맛을 감수할 각오가 필요하다. 문화예술인들에게 문화권력은 없다. 예술적 자존심과 문화의 정체성에 예민한 문화예술인들이 당연히 제기해야 할 문제를 뒷마당에 숨겨놓은 이유를 이렇게 짐작한다면 과민하고 편파적인가.
현산은 가칭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라는 현장 안내판을 세워놓고 미술관 건립에 여념이 없다. 시청은 이렇다 저렇다 반응도 없다. 가칭 '수원아이파크미술관'에서 아이파크라는 브랜드를 지워야겠다는 오기가 꾸역꾸역 솟구친다.
/윤인수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