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시인이고, 누구나 소설지망생이었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이면 문학을 토론하던 그런 시대가 있었다. 1970·80년대 , 우리는 그런 시대를 ‘문학의 시대’라 부른다. 시집 초판 1천권이 순식간에 팔려 나가는 것은 물론, 문학평론집이 서점 서가에 꽂혀있던 그때, 그 중심에는 문학평론가 김현이 있었다. 해방 이후 우리 글로 교육받은 한글세대, 비평을 창작의 경지로 끌어 올렸고, 자신의 비평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언어를 가미시켰던 독보적인 평론가. 올해는 그의 25주기가 되는 해이다.

“내 육체의 나이는 늙었지만 내 정신의 나이는 언제나 1960년 18세에 멈춰있다. 나는 거의 언제나 4·19세대로서 사유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내 나이는 1960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 이렇듯 김현은 4·19 혁명으로 부터 세례를 받은 평론가였다.

불과 20여년이 지난 지금, 시집은 100권을 팔기 어렵고, 문학평론집은 입을 맞춘 듯 서점의 서가에서 사라져 버렸다. 미디어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그 흔해 빠진 자기소개서 한 장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은 단언컨대 ‘독서의 부재’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으니, 쓸 수 없는 것이고, 상상력이 고갈됐으니 미래도 그릴 수 없다. 포털 사이트에 ‘김 현’ 두 글자를 치면 국회의원 김현이 메인으로 뜨는 것도 지금이 문학의 시대가 아님을 반증하는 것으로 봐야한다.

불행하게도 신은 재능이 철철 끓어 넘치던 김현을 불과 그의 나이 48세 되는 해 데려갔다. 그의 25주기를 맞아 김현 문학에 대한 재조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의 이름에서 가져 온 ‘김현문학패’가 제정돼 제1회 수상자로 시인 성기완(48)씨와 소설가 한유주(33)씨가 선정됐다. 김현의 제자와 후배들이 세운 사단법인 ‘문학실험실’은 오는 22일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김현 비평의 역동성’을 주제로 한 포럼도 갖는다. 모두 그가 그리워서다.

무명 시인의 하찮은 시도 밤새워 꼼꼼히 읽고 하나하나 댓글을 달아 주었던 김현이다. 지금 그가 너무도 그리운 것은, 이번 신경숙의 표절사태에 드러났듯 일부 우리 문단 권력이 정치 권력을 등에 업고 영토확장에 골몰하고, 그로 인해 문학적 권위마저 독점 차지하려고 하는 과도한 욕망으로 타락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