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맹정음 보급 앞장선 곳, 인천 '송암점자도서관'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제작 한창
긴 과정… 신작 바로 접하기 어려움
점역후 부피 늘어… 공간 확보 문제
우편·모바일 대출… 오디오도 제공
"강제성 없는 점자 제도, 현실 미흡"
인천에서 시각장애인들이 점자 책을 읽으려면 미추홀구에 있는 '송암점자도서관'으로 가야한다. 이 도서관은 인천에서 점자 책을 제작하고 보급하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도서관 이름은 인천 강화군 출신으로 한글 점자를 창제한 박두성 선생의 호인 '송암'을 따왔다.
송암점자도서관에는 올해 9월 기준 점자로 점역된 소설, 그림책, 점자 혼용 도서 등 1만7천여권이 있다. 2주에 1~2권의 신간 도서가 점자로 제작돼 열람실 책장에 꽂힌다.
지난달 25일 찾아간 송암점자도서관 점자도서제작실에서는 최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점자 책 제작이 한창이었다. 국가적 경사에 시각장애인들이 소외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시각장애인이 신간이나 화제작 등을 곧바로 점자 책으로 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 도서를 점자 책으로 바꾸는 과정에 긴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우선 온라인 파일 형태의 도서 원문을 점역 프로그램을 통해 점자로 바꿔야 한다. 이어 점역교정사가 페이지를 조정하고, 어문 규정에 따라 표기와 어법 상의 오류를 수정하며 오탈자를 잡는다.
도서 원문을 온라인 파일로 제작하는 데에만 족히 한 달은 더 걸린다고 한다. 원문을 스캔하는 방식이 있으나, 오탈자가 많이 생겨 손수 입력해 파일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힘을 보태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도서관에 소속된 점역교정사 1명이 1권을 점역하는 데 통상 1~2주가 걸린다.
송암점자도서관은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 교재 등 시각장애인이 신청한 도서를 제작해 보급하는 업무도 하고 있다. 신간 도서들을 충분하게 점자 책으로 제작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서관 측의 점자 책 발간에 힘을 크게 덜어줄 방법이 있다. 출판사가 도서 원문 파일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작권이 있는 출판사들은 원문 파일이 유출되는 것을 우려해 협조를 꺼린다.
송암점자도서관 이민정 점역교정사는 "출판사가 점자 책을 제작하는 도서관에 도서 원문 PDF 등 온라인 파일을 제공할 의무가 제도적으론 없다"며 "도서관이 시각장애인을 위해서만 이런 파일을 사용한다는 것을 명확히 해 출판사에 협조를 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비좁은 공간도 문제다. 일반 도서를 점역하면 페이지 수가 늘어나 한권에 엮어내기 어렵다. 통상 일반 소설 1권의 경우 점자 책은 4권으로 부피가 늘어난다. 오래된 책이라도 행여나 점자 책을 찾는 시각장애인들이 있을까봐 도서관에선 쉽게 폐기 처분을 결정할 수도 없다.
송암점자도서관 정선이 팀장은 "소리도서 등 점자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져 점자를 사용하지 않는 시각장애인이 많아진 것 같다"면서도 "어떤 책들은 꼭 귀로만 듣고 공부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맞춤법이 틀리면 정확한 내용과 의미 전달이 어려운 경우가 있어 오디오 등 대체 수단은 점자를 대신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점자 수요에 관계 없이 누군가는 점자로 된 책을 만들고, 가르치고, 지켜야 한다. 그게 도서관의 역할"이라며 "정부가 점자 책 활성화를 위해 정책을 개선하고, 출판사로부터 점자 콘텐츠 제작에 협조를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누군가는 점자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송암점자도서관은 방문이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우편으로도 도서 대출을 하고 있다. 또 최근 홈페이지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한소네 등 점자정보단말기기나 오디오로 점자 책을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혹여 출판사가 저작권 등을 문제삼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인 박수아 송암점자도서관장은 "일반 도서가 나올 때 점자 책이 함께 나오고, 제품이 출시될 때 포장지에 점자가 표기되는 등 당연하게 모든 일상에 점자가 있어야 한다"며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일상 생활에서 접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는 이미 마련돼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어 "시각장애인 스스로가 점자를 배우고 활용해서 점자를 지키고 유지해야 하고, 일상에 점자가 함께하기 위해 시각장애인, 정부, 기업, 출판사 등이 서로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