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 활성화, 전문가들 해법은
"미국서 점자 배운 30% 직장 얻어"
"컴퓨터 등장땐 불용론… 여전히 사용"
"스웨덴서도 포장지에 표기 계속 노력"
"스스로 요구해야 사회 전체 바뀌어"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이 손끝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한글 점자, '훈맹정음'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점자 활용과 권리 보장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한국, 미국, 스웨덴 등 국내외에서 점자 활성화에 힘을 보태고 있는 이들에게서 훈맹정음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갈 해법을 들어봤습니다.
■ 미국 보스턴 국립 점자 출판사 '내셔널 브레일 프레스' 브라이언 대표
"Braille is still relevant."(점자는 여전히 유의미합니다.)
미국 보스턴 '국립 점자 출판사'(National Braille Press, 이하 NBP) 대표인 브라이언 A. 맥도날드(Brian A. Mac Donald)는 점자 책을 만드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점자는 시각장애인들이 일상에서 똑같이 정보를 얻고, 차별 없이 학습하고, 자유롭게 취미생활을 즐기도록 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합니다. 브라이언은 "미국 시각장애인 중 점자를 배운 30%는 독립성이 강하며, 덕분에 어디에든 직장을 얻어 일을 하고 있다"고 했어요. 반면 나머지 70%는 점자를 알지 못해 '미고용' 상태라고 합니다.
NBP가 소설이나 동화책 등 여가 생활을 위한 서적 외에 학생들이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 대학생 전공서적, 진학시험을 비롯한 각종 국가자격시험의 시험지까지 학습에 관한 모든 것을 점자판으로 제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시각장애인들도 배우길 원하는 분야가 있다면, 적어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도전해볼 기반은 조성돼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브라이언은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라며 이렇게 말했어요.
"1970년대 컴퓨터가 처음 개발되면서, 일부에서는 '이제 더 이상 점자를 사용하지 않아도 돼. 컴퓨터에 말하면 다 해결해줄 거야'라는 인식이 생기기도 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점자는 남아 있습니다."
■ 스웨덴시각장애인연합회 헨릭 예때손
스웨덴시각장애인연합회(Synskadades Riksforbund, SRF)에서 점자 활성화 업무를 맡은 헨릭 예때손(Henrik Gotesson)은 "스웨덴은 정부기관이 점자 콘텐츠를 전담 제작하는 등 점자 활성화에 힘쓰고 있지만, 스웨덴 시각장애인 중 90% 가량이 점자를 읽지 못한다"고 했어요.
SRF는 스웨덴 문화부 산하기관인 'MTM'(Myndigheten For Tillgangliga Medier)과 교류하며 점자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에요. 기업에도 "상품에 점자로 제품 정보를 알려달라"고 꾸준히 요청했고, 그 결과 최근 한 냉동식품 회사가 제품 포장지에 점자를 표기하기 시작했답니다.
헨릭 예때손은 "우리는 시각장애인도 동등하게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점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정부기관과 기업에 점자 표기를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점자를 이용하고 점자 표기를 스스로 요구하는 시각장애인이 늘어야 전체 사회가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스웨덴 정부가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반드시 점자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는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또 중도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배울 센터도 늘려 이들이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서 점자를 배울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음성 한계로 대통령 '윤성열'로 많이 알아
활성화 위해 점자 → 일반문자 '역점역' 필요"
"임용시험 점자 참고서 구하기도 어려워…
생필품에 표기땐 배우는 장애인 늘어날 것"
■ (주)도서출판점자 김동복 대표
"시각장애인은 '윤석열' 대통령 이름을 '윤성열'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성의 한계입니다. 특히 개념 정의가 필요한 학업에서 시각장애인이 과연 음성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점자 책 제작업체인 (주)도서출판점자 김동복 대표는 음성이 점자를 대체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반문했어요.
저시력자인 그는 점자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김 대표는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는 기회다. 일상생활부터 직업 선택, 자기 발전까지 다양한 선택을 하도록 기회를 넓혀주는 매개체"라며 "학습에서 맞닥뜨리는 표, 그래프, 수식 등은 음성만으로는 학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자 학습에서 어려운 부분은 손으로 읽는 촉지훈련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이를 도울 점자 지도사가 많지 않고, 점자를 집중해서 배울 공간도 많지 않다"고 지적했죠. 이어 "점자 활성화를 위해 무엇보다 점자 교육이 우선돼야 하고, 시각장애인이 읽을거리도 풍부해야 한다. 교육과 콘텐츠 이 두 가지가 균형 있게 가야 한다"고 했어요.
내년부터 시도별로 점자교육원이 설립되는데, 이 교육원에서 사용할 교재·교구 개발에 김 대표도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 중도 시각장애인, 점자 교육을 하는 비장애인 지도사, 점역 교정 전문가 등을 위한 맞춤형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데도 힘쓰고 있답니다.
점자 활성화를 위해선 점역을 넘어 점자를 일반 글자로 바꾸는 '역점역' 기술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AI로 신기술이 도입되고 외국어도 자동 변환되는 시대에 시각장애인도 디지털 환경에서 점자로 비장애인과 소통이 가능해야 합니다. 카카오톡 등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점자를 사용하는 장애인과 소통하고, 시각장애인도 온라인 기사에 점자로 댓글을 작성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점자 활성화예요."
■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역사교사인 중암중학교 류창동 교사
"귀로 듣는 것과 직접 읽어서 습득하는 것은 그 밀도가 다릅니다. 학습에서만큼은 점자를 대체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첫 시각장애인 역사교사인 류창동 교사는 임용시험을 준비할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어요. 그는 지난 2019년 3월 교직에 처음 입문해 지금은 서울 중암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있어요.
류 교사의 임용시험은 도전의 연속이었답니다. 이전에 특수교육 분야나 국어·영어 등 주요 과목에선 시각장애인이 합격한 전례가 있었지만, 역사 과목에선 없었어요. 그렇다 보니 점자 책으로 번역된 역사 임용시험 필독서나 참고서를 구하기도 어려웠죠. 류 교사는 필요한 책을 모아 직접 점역을 요청했는데, 언제 완성될지 기약이 없었다고 해요. 역사 과목 특성상 내용이 어렵고 한자도 많아서였죠.
류 교사는 "우리나라는 책이 출판된 뒤 시각장애 당사자나 복지관 관계자가 점역을 요청해야만 그제야 점자 책으로 만들어진다"며 "나 역시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 점역 맡긴 참고서를 기다리느라 1년이란 긴 시간을 흘려보냈다"고 했어요.
"전자기기는 사용하다가 고장 나거나 방전되기도 하죠. 책을 읽고 싶을 때 누군가가 항상 옆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알고 종이에 점자가 표기만 돼 있다면, 시각장애인도 언제든 스스로 읽을 수 있어요. 책뿐만 아니라 생활필수품이나 의약품 등에 점자 표기를 법으로 의무화한다면, 자연스럽게 점자를 배우는 시각장애인도 늘어날 것입니다."
"출판사 원문 협조, 정부가 적극 홍보를"
"점자 정책 부처간 협업, 컨트롤타워를"
내년부터 시도별 점자교육원 운영 시작
"기존기관 지정… 접근성·강사 등 숙제"
■ 시각장애인 국회의원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
"시각장애인이 점자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정보 접근이 제한되면, 개인의 삶의 질은 나빠지고 사회에서는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점자가 하나의 언어로서 모두에게 당연하게 여겨져야 합니다."
지난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점자 활성화를 위한 입법 활동을 적극 펼치고 있는 김예지 의원은 이렇게 강조했어요.
저작권법 제33조를 보면 시각장애인과 독서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해 점자 등 대체자료로 변환해 복제, 배포, 공연 또는 공중 송신(저작물을 많은 사람이 수신하거나 접근하게 할 목적으로 무선 또는 유선통신의 방법으로 전달하는 것)이 가능해요. 하지만 출판사가 저작물 유출 등을 우려하면서 지역 점자도서관은 협조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김 의원은 "저작권법 내용을 모르거나, 저작권에 대한 지나친 우려로 법을 알아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저작물 제작자 등 출판사들이 협조할 수 있도록 문화체육관광부나 유관기관이 올바른 안내와 홍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합니다.
또 "점자법 소관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업무가 서로 나눠져 있다. 점자 정책의 컨트롤타워를 하나로 지정해 부처 간 협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좋겠다"고도 했어요.
김 의원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공공기관의 점자 자료 제공을 의무화하고, 선거공보물의 내용이 누락되지 않도록 점자형 공보물 매수를 확대한 법안을 발의해 국회 통과를 이끌어냈어요. 점자 문맹률의 심각성을 인지한 그는 점자교육 전문 교원을 양성하고, 국가가 점자교육원 운영을 지원하도록 점자법 개정도 추진했죠. 이 법안은 내년부터 시행됩니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는 각 지역에 있는 점자도서관, 시각장애인복지관 등을 교육원으로 지정하는 데 그쳐 여전히 시각장애인들의 낮은 접근성, 강사·공간 부족 등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어요.
김 의원은 "지역별로 점자교원 양성을 위한 접근성을 확보하려면 시각장애인에게 교통비를 지원하거나 점자교육 기관을 세부적으로 지정하는 등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점자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며 "점자교육의 필요성이나, 점자교원 양성과정 이후 곧바로 점자교육 현장에 투입하도록 연계하는 등 지자체가 점자 교육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선행되어야 한다"고 설명했어요.
22대 국회에서도 김 의원의 활약을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이번 국회에서는 화장품 용기에 점자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어요. 식품위생법, 건강기능식품법에 생활필수품 포장과 용기에 점자를 반드시 표기하도록 해 시각장애인들이 일상 곳곳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김희연·백효은·정선아기자 khy@kyeongin.com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