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상상력 형이상학적 가치 노래
독자에 사랑받는 대표작 '님의 침묵'
이별의 슬픔 비감한 감정 빠져들어
슬픔의 힘, 운명 맞서는 인간 역동성
비극적 운명 초극하는 의지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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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 시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충남 홍성에서 출생했다.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활동했으며 줄기차게 불교개혁을 주장하기도 했다. 여러 논문과 장편소설을 쓰고 불교서적을 저술했다. 장편소설 '흑풍' '후회' 등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불교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형이상학적 가치를 주로 노래했다. 시집으로 '님의 침묵'이 있다.

그의 대표작 '님의 침묵'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시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위키백과)

'님의 침묵'은 첫 행부터 비감한 감정에 빠져든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로 전개된 첫 행은 복받치는 이별의 감정을 드러낸다. 푸른 산빛과 붉은 단풍나무의 대립이 이별하는 님과 나의 조응으로 읽히면서 별리의 아픔이 더 깊어지는 듯하다. 여기서 푸른빛은 님과 사랑하던 때의 기쁨과 희망, 그리고 생명력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그런가 하면 붉은빛은 이별의 고통과 절망감, 그리고 쇠락한 느낌으로 이해된다. 이별의 비극을 향해서 나가는 상황은 안타까움을 불러온다. 안타까움은 작은 길이나 깨치고, 혹은 차마 떨치고 같은 격한 감정의 파고를 불러오는 것이다.

황금의 꽃이나 차디찬 티끌은 사랑-푸른 빛, 이별-붉은 빛의 관계를 보여준다. 꽃이나 황금은 한용운 시세계의 다양한 이미지 중에서도 긍정적이고 가치지향적인 이미지들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역동적인 상상력과 생명력이 넘치는 사랑에 대한 미학을 담보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황금의 꽃과 대조를 이루는 차디찬 티끌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화되어 이별의 절망감과 비애를 불러온다. 푸른 산빛-황금의 꽃, 단풍나무 숲-차디찬 티끌의 관계보다 더 강열한 이미지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일 것이다. 첫 키스는 사랑의 서곡이어서 날카로운 이라는 수식어를 수반하고 있다. 금속성의 이미지인 날카로운이라는 표현이 운명의 지침과 결합되면서 위태로운 운명의 전조를 드러낸다. '님의 침묵'의 주제가 사랑이라면 그 사랑은 운명을 극복하는 사랑이어야 할 것이다.

이 시에서의 이별이 원치 않는 운명에 의한 것임이 드러나는 문장은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와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라는 구절이다. 따라서 여기서의 님은 수많은 이별가에 등장하는 '버리고 떠나는 무정한 님'이 아니라 운명에 희생 된 불운한 님이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에서 보여주는 이별은 비극적인 운명과 운명이 보여주는 뜨거운 상흔이라 할 것이다. 운명에 도전하는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 것인지, 이별-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이라는 부정적인 관계는 슬픔의 힘-새 희망이라는 표현에 의해 전도된다. 슬픔의 힘은 운명과 맞서는 인간의지의 역동성을 내장하고 있다. 슬픔의 힘을 계기로 만남-이별의 관계는 이별-만남으로 전도된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에서 보여주는 비극적 운명을 초극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돋보인다.

/김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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