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박 컨템포러리’ 시리즈
비디오 아트 세례 속 4인 연주 퍼포먼스
3년간 안정된 시스템 속 앨범·공연 다채
음악 전시 작품 ‘블러’로 또한번 틀 깨
‘백남준(1932~2006)의 포스트 모더니즘’을 음악적으로 조금 더 기울어지게 한다면 이런 퍼포먼스가 아닐까.
2019~2021년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10·11·12기) 입주작가로 활동한 음악가 지박이 그가 이끄는 브리(VRI) 스트링 콰르텟과 함께 2020년 11월 26~27일 인천아트플랫폼 C공연장에서 선보인 ‘지박 컨템포러리 시리즈 Vol. 19 백남준’은 백남준을 향한 오마주다.
바이올린 박용은·임가희, 비올라 이승구, 첼로 지박 등 4명의 현악 연주자가 백남준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비디오 아트’의 세례 속에서 즉흥 연주 퍼포먼스를 펼친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연주 중 연주자는 누워서 활을 켜기도 하고, 활대로 조명을 건드리기도 한다. 좀처럼 장르를 구분하기 쉽지 않은 이 퍼포먼스는 유튜브에서 전체를 관람할 수 있다.
지박은 2014년부터 ‘지박 컨템포러리’ 시리즈를 만들어 내면서 특정한 장르에 머물기 보다는 정형화된 형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 내는 작업에 열중해왔다.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입주 시기 내놓은 19번째 시리즈 ‘백남준’이 ‘지박 컨템포러리’ 전반을 아우르는 주제를 제시한다. 지박은 백남준이 활동했을 당시의 사회·정치 상황에 대한 조사·연구를 토대로 백남준을 새롭게 해석했다.
“음악과 비주얼 쪽에서 모두 활동한 백남준 선생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기준으로 봤을 때도 기존 예술 형식을 완전히 벗어난 실험예술이나 현대음악이 1950~1960년대에 굉장히 많이 나왔는데, ‘왜 그때 많았지’ 하고 고민해 보면 세계대전의 영향이 분명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이후 ‘완전히 새로운 것이 과연 나왔나’하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 틀을 깨는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지박은 클래식을 전공한 첼리스트였으나, 프리재즈, 현대 음악, 비디오 아트, 영화 음악 작곡가, 현대무용 음악 감독 등 어느 한 분야로 특정할 수 없는 다채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경계를 짓는 ‘예술’이라는 단어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3년 동안의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입주 시기에 가장 많은 앨범을 제작·발매하고, 가장 많은 공연을 개최했다. 안정화된 창작 환경과 지원 시스템 덕분이었다. 지박은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한 지 15년이 됐으니, 아트플랫폼의 도움을 받았던 더 많은 작가들이 앞으로 예술계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박 컨템포러리’는 올해 9월1일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24번째 시리즈 ‘블러(blur)’를 발표했다. 지박은 이번 시리즈에서도 ‘음악 전시’의 개념으로 틀을 깨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역시 백남준의 영향이라고 한다. 소리꾼, 양금, 피아노, 아쟁, VRI 스트링 콰르텟 등 예술가들이 전시장(공연장) 곳곳을 이동하면서 즉흥 연주·퍼포먼스를 이어간다. 객석이 없이 예술가와 관객이 섞인다. 지박은 이를 “장르, 매체 간 재매개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blur’에선 업라이트 피아노가 해체되고, 해체된 피아노 위에선 삼겹살이 구워진다. ‘고기 파이노’란 곡이다. ‘채소 소나타’도 등장한다. 지박은 전시와 공연을 그 경계의 중간쯤으로 연출해보고자 했다. 퍼포먼스의 모든 과정을 관객에게 오픈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지박은 장기적으로 40~50명 규모의 오케스트라로 작업을 하고 싶은 꿈이 있다고 한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