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바람속 가짜뉴스 파고들어
여의도 떠나… 광화문은 인산인해
표결결과 군중 바람과 달라 ‘침묵’
대통령 괴롭히던 與대표체제 물러나
망명자 심정으로 허둥지둥 여권 찾아
어떤 날은 참으로 긴 하루인 때가 있다.
새벽 눈을 뜨면서 먼저 생각난 것은 김윤식 선생님 사모님께 전화를 드리는 것. 전날 규장각 한국학 연구소에서 ‘김윤식의 카프 연구’를 주제로 발표를 했다.
발표는 이런 얘기로 시작했다. 강의실에서 선생은 막스 베버의 저작 ‘직업으로서의 학문’을 자주 거론하셨다. 예술 작품은 극복이라는 게 불가능하다. 그러나 학문은 뒤에 오는 것에 의해 극복된다. 그래서 허무하다. 그래도 학문을 해야 하는가.
드디어 오늘이 그의 운명의 날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시인협회에서는 서명하지 않기로 했다. ‘한국작가회의’와 ‘펜’은 서명을 한다고 했다. 친한 연구자에게서 서명을 위한 링크 문자가 전달되어 있었다. 후배 시인은 오전부터 여의도로 나간다 했다. 한 기자는 여의도 거쳐 광화문으로 가 현장 취재를 할 것이라 했다. 대학 후배로부터 투쟁을 위한 지원금을 요청하는 전달 문자가 당도해 있었다.
학문, 공부를 하기 어려운 시대였다. 광란의 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세상이 비등점 낮은 기름처럼 끓어오르고 있었다. 온갖 가짜뉴스들이 서로 촌각을 다투며 귀를 파고들었다. 그런 뉴스들은 말짱 가짜라는 것이 다 드러나기도 전에 또다른 가짜들이 버젓이 공중파 방송을 탔다. 얼굴이 수염투성이인 사내가 국회에 나와 긴장된 표정으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진짜처럼 꾸며냈다.
서강대교를 건너면 차량 통행이 막혀 있을 듯했다. 마포대교로 우회해서 여의도로 들어갔다. 채 한 시나 되었을까. 여의도는 벌써 심상치 않게 술렁이고 있었다. 그러나 상상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일지도 몰랐다.
아쉬운 대로 여의도를 떠나 찾아간 광화문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탄핵 반대”, “아무개 구속”, “부정선거 수사”를 주장하는 전단지가 넘쳐나고 있었다.
표결 시각은 오후 네 시였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구해 달라고 울부짖듯 기도하고 있었다. 표결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의 사람들을 어떻게든 카메라에 담아두고 싶었다.
표결 결과는 군중들의 바람과는 달랐다. 표결 결과가 전해진 순간, 동화면세점 앞은 일순 침묵의 장으로 화했다. 사람들은 일시에 목소리를 잊었다. 잠시 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이 연단에 올라섰다. 자신들은 승리했노라 했다. 대통령이 이겼노라 했다. 낙심한 사람들에게 기운을 불어넣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쉽게 납득가지 않는 승리 선언이었다.
어느새 짧은 초겨울 날이 저물고 있었다. 이제 출국 준비를 해야 했다. 그 밤 0시20분에 카타르 도하를 거쳐 아제르바이잔 바쿠로 가는 비행기를 타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거기서 ‘동아시아 문화론을 넘어서’를 발표해야 했다. 이번 학기는 실로 숨가쁜 발표의 연속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부랴부랴 트렁크에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어느새 시간은 밤 여덟시. 어디선가 여당의 최고위원들 다섯 명이 전부 사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통령을 그토록 집요하게 괴롭히던 대표 체제가 붕괴했노라고들 했다. 인두겁을 쓰고 어쩌면 저럴 수가 있느냐고 비난을 받던 사람이었다. 그가 순식간에 대표직에서 끌어내려진 것이었다. 헌법재판소 판사 구성이 대통령을 탄핵시키기 어렵다고도 했다. 그렇던가?
아무려나. 기후 온난화 때문인지 세상은 광기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었다. 나는 몇 년 전 델타 바이러스 코로나로 하마터면 죽을 뻔했었다. 바이러스는 무섭다.
여권을 어디에 두었더라. 무슨 망명자라도 된 것 같은 심정으로 허둥지둥 여권을 찾았다. 없다. 늘 시간이 임박해서야 여권을 챙기는 악습을 자탄했다. 겨우겨우 여권을 찾아냈다.
한밤의 자정. 겨우겨우 탑승을 마쳤다.
한밤의 이륙은 차마 떠나지 못할 세상과 몌별을 감행하려는 것만 같다. 3박5일의 짧은 여정. 부디 조국이여, 무사하거라.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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