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주년 기획전… 내달 2일까지
레지던시 출신 11개팀 ‘교류’ 의미 짚어
과학 분야 접목·작업물 끼리 지지 선봬
전시 공간도 나누지 않고 유기적 연결
2009년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은 한국의 주요 예술 창작 레지던시 기관으로서 입지를 다지며 동시대 예술가들의 안정적 창작 환경을 제공해 왔다. 이를 통해 일정 기간 자연스럽게 ‘느슨한 공동체’를 형성한 레지던시 입주작가들은 다양한 방식의 교류와 협업을 이어 왔다.
인천아트플랫폼이 개관 15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10월25일부터 진행 중인 기획전시 ‘협업의 기술’은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거쳐 간 작가들 가운데 이번 전시를 위해 협업한 개별 작가들과 기존 2명 이상으로 팀을 이뤄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11개 팀(18명)이 보여주는 ‘협업’은 창작 공간이 갖는 역할과 의미를 되짚게 한다.
전시는 다양한 형태의 ‘협업의 기술’을 선보인다. 우선 예술과 비예술로 단순히 가르는 경계를 넘어 과학 등 다른 분야 전문가와 함께한 사례가 눈에 띈다. 방자영과 이윤준으로 구성된 ‘방앤리’(2014년 입주작가)는 인간의 뇌 기능을 모사하려는 공학분야인 ‘뉴로모픽’(Neuromorphic) 연구자 박종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선임연구원과 협업한 영상, 설치, 회화 작품을 전시했다.
방앤리가 전시장에 구성한 세계는 텅 빈 도로의 풍경과 도로 위 낙타 조형물의 모습을 담은 회화 2점을 지나 ‘사건의 재구성’(2023)이란 미니어처 설치 작업으로 시선을 닿게 한다. 자율주행 차량이 멸종된 동물을 만나 우발적 사고를 일으키는 현장을 묘사했다.
이 사건은 바로 옆 고풍스런 공간에 마련된 3개 채널 영상 작업 ‘아이샤인’(2023)과 ‘AI 예언자 청문회’로 이어진다. 영상은 뉴로모픽 칩을 장착한 초지능의 ‘AI 예언자’를 탑재한 완전 자율주행 차량이 상용화된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을 대신해 AI가 모든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기술사회를 그린다. 이들의 작품 전반에는 과학기술 윤리와 딜레마뿐 아니라 시청각 장애인의 예술 작품 접근성 향상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동시대 서화에 자신의 해석을 더한 새로운 그림의 ‘황씨화보’ 연작을 이어 가는 황규민(2023년 입주작가)은 ‘직조회화’라는 독보적 작품 세계를 구축한 차승언(2019년 입주작가)의 작품들에서 영감받은 ‘차승언화보’(2024)를 전시장 1층과 2층에 걸었다. 두 작가의 나이가 20살이란 점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구자명(2021년 입주작가)과 임선구(2023년 입주작가)는 각각 금속과 종이를 주로 다루는 작가로, 과거 작업실을 공유한 경험이 있다. 이들은 서로의 작업 요소를 서로 교환하는 방식의 창작 활동을 이어 왔는데, 이번 전시에선 금속을 만드는 ‘불’과 종이(종이죽)를 만드는 ‘물’을 교환했다. 금속에 물을 쓰고, 종이에 불을 써야 하는 당혹스러움을 원동력으로 서로의 작업에 기대거나 지지하는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2018년 세계 최고 권위의 전자음악상인 ‘독일 기가-헤르츠 어워드’를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듀오 ‘그레이코드, 지인’(2016년 입주작가)은 신작 ‘업사이드다운’(2024)을 통해 ‘소리’를 전시한다. 영상 작업을 하는 문소현과 전자음악팀 ‘COR3A’는 2019년 입주작가로, 수차례 영상과 음악의 협업을 선보인 바 있으며 이번에도 만났다. 김정모(2018년 입주작가)와 황문정(2017년 입주작가)은 사전 관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협업 형식을 탐구한다. 인천아트플랫폼 E-6호실에 별도로 마련된 이들의 작업 주제는 레지던시와 예술가 지원 제도다.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전시라서 흥미롭다.
이번 전시 공간 디자인은 손주희 건축가와의 협업이다. 서로 다른 매체의 작업을 굳이 차단하지 않고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가벽 설치를 최소화하고, 폐기물 또한 최대한 줄이는 방식을 택했다. 전시는 내달 2일까지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