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미술관 소장 ‘8폭 병풍’ 정감어린 작품
박경종의 ‘만수만복’ 글씨·그림들 콜라주
현실 반영한 민화, 경쟁력 있는 세계 미술

동아시아의 스테디셀러 중 하나는 ‘삼국지(三國志)’가 아닐까. 이야기가 워낙 재밌으니, 예부터 그림으로 곧잘 그려졌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16세기에 그 흔적이 엿보인다. 1559년 박순(朴淳, 1523~1589)이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를 보고 시를 지은 내용이 ‘사엄집(思俺集)’에 보이는 까닭이다. 그 뒤로 소설의 삽화, 벽화, 담채화 등으로 그려졌으나, 그것은 사대부들의 취향이었다.
19세기에는 민간에서 ‘삼국지도(三國志圖)’가 크게 유행을 탔다. 그러면서 민화로 그려지게 된다. 대체로 집 내부를 치장하는 장식화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중에는 종교화로도 그려진 것들이 있다. 관우(關羽)가 신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경기도미술관의 ‘알고보면 반할세계’에 출품된 작품 중에는 민화로 그린 ‘삼국지도’가 한 점 있다. 8폭 병풍의 이 그림은 그림마다 상단은 꽃과 새(花鳥), 중단은 삼국지의 장면, 하단은 물결이나 구름안개(雲霧)다. 그림은 익살스럽기 짝이 없고 그만큼 정감 어리다. 게다가 곳곳에 민간 설화나 우리 문화의 상징이 곁들어 있어 보는 맛이 풍부하다.

박경종의 ‘만수만복’은 마치 ‘삼국지도’에 곁들어 있는 상징들처럼 수많은 그림과 글씨를 따다가 꾸민 작품이다. 콜라주라고 해야 할까. 민화 속 그림과 글씨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새로운 현대미술이 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 또한 그 맛이 참 풍부하다.

손기환은 ‘K팝아트’의 선구자다. 그는 이미 1980년대의 소집단 ‘그림동인 실천’에 참여하면서 옛그림, 민화, 만화, 그리고 현실사회의 이미지를 활용한 정치적 팝아트를 선보였다. 어릴 적에 가지고 놀던 동그란 딱지 그림도 그에게는 훌륭한 소재였다. ‘DMZ 산수’는 그가 오랫동안 고민해 온 ‘DMZ’를 미학적 주제로 다룬 것이다.

지민석의 그림들도 옛그림과 자본주의 현대사회를 한 꼴로 그려서 풍자하는 작품이다. ‘스타벅스’는 마치 스타벅스 커피가 영약이라도 되는 양 그려져 있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민화는 이와 같을 것이다. 옛그림을 따라 그리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그런 측면에서 현대 민화는 가장 경쟁력 있는 세계미술이 아닐까.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