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기획전… 6월 29일까지

 

백남준의 예술정신 공명 젊은 작가 7팀 참여

생태계·시스템·인간의 노동 등 다양한 사유

백남준 아트센터 전시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4.0’ 전경. 2025.2.19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백남준 아트센터 전시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4.0’ 전경. 2025.2.19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62년 전,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은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에서 ‘랜덤 액세스’를 선보였다. 랜덤 액세스는 벽면에 붙인 카세트 테이프를 관람객이 직접 긁어보고 그 소리를 듣도록 한 작품이다. 작가와 관람객이 상호작용한다는 점에서 백남준의 예술적 사유가 돋보였다.

혁신적인 예술 실험의 장이었던 당시 전시 포스터에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물음이 담겨있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의 철학적 사유가 녹아있는 이 문구에는 절대적인 진리와 익숙한 것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던 백남준의 정신이 오롯이 반영됐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올해 첫 기획전인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4.0’에는 미디어 아트라는 미지의 영토를 개척해나간 백남준의 예술적 탐구를 공명하는 젊은 작가 7팀이 참여했다. 이들이 선보인 14점의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현대사회가 규정한 여러 관행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장한나 작품 ‘신 생태계’ /경기문화재단 제공
장한나 작품 ‘신 생태계’ /경기문화재단 제공

장한나 작가의 ‘신 생태계’는 자연의 일부가 된 듯 보이는 플라스틱을 ‘뉴락’이라는 독자적인 표현으로 정의하고 있다. 작가는 수년간 전국 곳곳의 바닷가를 돌며 돌처럼 변한 플라스틱을 수집했다. 인간의 손을 떠난 플라스틱이 일종의 생태계가 되고 있단 사실은 기후 위기 속 섬뜩한 미래를 고민해보게 한다.

동물을 추적한 데이터가 자연재해나 기후변화를 헤쳐나가기 위한 하나의 지표가 된 미래를 상상한 정혜선·육성민 작가의 ‘필라코뮤니타스’는 동물을 능동적인 주체로 해석했다. 만물에 대한 경외심이 들게 하는 이 작품에선 인간과 비인간, 나아가 기계가 공생하는 초연결 시대의 생태계를 엿볼 수 있다.

정혜선, 육성민 작가 작품 ‘필라코뮤니타스’ /경기문화재단 제공
정혜선, 육성민 작가 작품 ‘필라코뮤니타스’ /경기문화재단 제공

얀투 작가 작품 ‘진행 중인 전시’ /경기문화재단 제공
얀투 작가 작품 ‘진행 중인 전시’ /경기문화재단 제공

전시 공간을 누비며 오브제를 운반하는 차량 ‘진행 중인 설치’를 선보인 얀투 작가는 인간 고유한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작품 설치 행위를 기계가 수행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클릭 한번이면 물건이 배송되는 시스템 뒤에선 누군가 끊임없이 노동을 하고 있다는 점을 전면에 드러낸 이 작품은 코로나19시대에 당연해진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오로라를 모티브로, 전시실 천장에서 바닥으로 흐르는 빛의 폭포를 형상화한 고요손 작가의 작품 ‘임채은의 오로라 여정기’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모았다. 작가는 지인의 사적인 경험을 작품으로 형상화해 타인의 특별한 경험에 공감이라는 다리를 마련하고 관람객과 새로운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김호남 작가 작품 ‘해저 광케이블을 위한 에코챔버 시스템’ /경기문화재단 제공
김호남 작가 작품 ‘해저 광케이블을 위한 에코챔버 시스템’ /경기문화재단 제공

백남준아트센터 전시실과 전세계 9개 도시 서버간 데이터가 오가는 속도에 따라 달리 재생되는 디스플레이를 작품화한 김호남 작가의 ‘해저 광케이블을 위한 에코챔버 시스템’, 미얀마와 태국을 잇는 철도 건설 과정을 통해 역사적 비극이 관광 명소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을 담은 사룻 수파수티벡 작가의 ‘콰이강: 고인을 기리며 열린 추모식’, 화려한 미디어 기술 이면에 가려진 인간의 노동을 조명한 한우리 작가의 ‘포털’ 등은 관습에 가려 인지하지 못했던 다양한 가치를 일깨운다. 전시는 6월29일까지.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