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미지·연출 함께… 한발 더 나아갈 용기 얻어”

 

기다림·느림의 미학 전달

‘아동문학계 노벨상’ 영예

 

따스한 감성 글로벌 진출

42개국 언어 낭독 경험도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 가희(왼쪽), 진주(오른쪽) 작가. 가희 작가가 디자인한 공간인 인천 주안동 카페 타이니닷에서 두 작가를 만났다. 2025.4.23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 가희(왼쪽), 진주(오른쪽) 작가. 가희 작가가 디자인한 공간인 인천 주안동 카페 타이니닷에서 두 작가를 만났다. 2025.4.23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세계적인 권위의 아동문학상인 ‘볼로냐 라가치상’의 ‘오페라 프리마’ 부문에서 그림책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이 대상을 수상했다. 오페라 프리마 부문은 작가의 첫 책에 부여하는 일종의 신인상으로, 한국 작가가 대상을 수상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은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담아낸 그림책이다. 가희·진주 작가는 다소 낯선 분야인 ‘사진 그림책’을 통해 일상에서 만난 한국적인 소재만이 빚어낼 수 있는 친근하고 따스한 감성을 표현하려 했다고 한다. 이들이 풀어낸 ‘아이들의 성장기’는 독자들에게 기다림과 느림의 미학을 전한다.

수상 후 ‘축제’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두 작가를 지난 23일 인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들은 최근 세계적인 규모인 이탈리아 볼로냐 아동도서박람회에 참가했던 일화부터 꺼냈다. 진주 작가는 “내로라하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런 자리가 처음인 신인이라 부담을 덜고 즐겁게 다녀올 수 있었다”며 “유엔 아동권리협약 조항을 42개국 언어로 낭독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한국 대표로 단상에 올랐기에 더욱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자연스레 그림책 작업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 책의 글을 쓴 진주 작가는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해왔다. 그는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커리큘럼과 디자인 기획을 담당했다”며 “양육하면서도 일을 이어갔고 아이가 4살 때 첫 책을 기획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진주 작가에게 그림책은 마치 종합예술처럼 다가왔다고 한다. 진주 작가는 “그림책은 글과 이미지, 공간, 연출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며 “이는 집필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꼈던 요소”라고 했다. 이어 “그림책 작업은 보통 출판사에 투고한 뒤 연계해준 일러스트레이터와 그림 작업을 하는 수순인데, 이 책은 가희 작가와 처음부터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야 잘 될 것같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 가희(왼쪽), 진주(오른쪽) 작가. 가희 작가가 디자인한 공간인 인천 주안동 카페 타이니닷에서 두 작가를 만났다. 2025.4.23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 가희(왼쪽), 진주(오른쪽) 작가. 가희 작가가 디자인한 공간인 인천 주안동 카페 타이니닷에서 두 작가를 만났다. 2025.4.23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

가희 작가는 그래픽 디자인, 공간 인테리어 등 다양한 작업을 해오던 중 진주 작가의 제안으로 처음 그림책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

가희 작가는 “즐겁게 일하긴 했지만, 아이들 사진을 찍으며 ‘남의 집 아이 일상’처럼 보이지 않는 작품으로서의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늘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고심 끝에 세상에 내놓은 두 작가의 책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영예를 안았다. 진주 작가는 “그림책 작가를 계속 해도 될까 고민이 많았던 터라 안도감이 컸다”며 “한국의 그림책 작가, 그중에서도 예비 작가와 신인 작가 모두에게 전하는 응원의 메시지라고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수상은 가희 작가에게도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실제로 샛별로 떠오른 가희 작가에게 일상 속 여러 변화가 찾아왔다. 국립현대미술관 내 미술책방, 남양주 현대어린이책 미술관 등에서 의뢰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두 작가는 독자들을 만나기 위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수상 전부터 힘을 합해 작업하던 책으로, 연내 출간이 목표라고 한다. 진주 작가는 “수상을 계기로 그림책 작가로서 한발짝 더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며 “사진 그림책 콘셉트로 더 많은 이들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가희 작가도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 과정이 즐겁고, 좋은 결과도 따라온다는 믿음이 생겼다”며 “다음 책도 기대해달라”고 했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