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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신공]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고장의 역사/ 향교 ‘공자님이 보고 있다’

고려와 조선 중등교육

지방 기숙형 공립학교
▲ 강화 향교 대성전 전경. /인천 계산여중 제공
▲ 강화 향교 대성전 전경. /인천 계산여중 제공
대성전등 제사공간도 마련
성현들의 가르침 아로새겨


고려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 지금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서당과 중·고등학교에 해당하는 향교, 대학에 해당하는 성균관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각 고을에서 지방 교육을 책임지던 곳이 바로 향교였지요. 향교(鄕校)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 ‘향촌(지방)에 있는 학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서울에 해당하는 한성에는 향교가 아닌 사부학당에서 중등교육을 담당했습니다.



조선 시대의 경우 모든 지방 행정구역의 지방관인 수령을 파견했을 뿐 아니라 향교를 만들었습니다. 수령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도 지방 교육을 진흥하는 일이었지요. 향교는 지금의 ‘기숙형 공립학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비슷한 역할을 했던 서원은 ‘자율형 사립학교’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서원이 향교와 다른 점은 국가가 아닌 사림(士林)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경치 좋고 외진 시골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서원도 이후에는 사액서원이 되면서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를 비롯한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게 됩니다.

인천광역시는 조선 시대에 인천, 부평, 강화, 교동 등 행정구역 4곳이 있었고 지금까지 각 도호부 청사와 향교가 남아있습니다.

인천 남구에 있는 인천 도호부 청사 옆에는 인천향교가 있어 이곳의 지명이 관교동(관청과 향교가 있는 지역)이 됐습니다. 옛 부평 지역인 계산동에도 부평 도호부 청사(현 부평초등학교 소재)와 부평향교가 남아있습니다.

향교는 기능에 따라 크게 강학 공간과 제사 공간으로 나뉩니다. 국립대학인 성균관도,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서원도 마찬가지였지요.

강학 공간의 중심에는 수업이 이뤄지는 명륜당(明倫堂)이 있고, 그 안쪽으로 양옆에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습니다. 주로 양반의 자제들이 동재에, 그 외 평민이나 중인의 자제들이 서재에서 숙식하며 공부했습니다.

제사 기능을 하는 곳은 대성전을 중심으로 양옆에 위치한 동무, 서무가 있습니다. 대성전(大成殿)은 본래 공자를 비롯한 중국 성인들이, 동무와 서무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선현들이 배향돼 있던 곳입니다.

해방 이후 전국 유림대회에서 대성전에 중국인들만 모시는 것은 사대주의라고 규정해 공자와 그의 제자인 4대 성인, 우리나라 명현 18위만 모시고 나머지 위패는 땅에 묻어버렸던 곳입니다.

향교와 현재 학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공부하는 곳에 제사 공간을 둬 산 자와 죽은 자가 같은 공간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이렇게 공자를 비롯한 성인들의 위패를 향교와 같은 학교에 둔 이유는 위대한 성현을 모시면서 그분들의 가르침에 따라 ‘큰 뜻을 이루겠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한때 일부 교실에 ‘엄마가 보고 있다’, ‘담임이 보고 있다’는 내용의 급훈이 걸린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수업에 집중하라는 의미로 ‘약간’의 겁을 주는, 재밌는 표현입니다. 우리 조상님들도 향교나 서원에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공자님이 보고 있다’고 무언의 경계심을 줬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은 인천 계산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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