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

[조성면의 장르문학 산책·73]정전과 장르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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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독서의 가장 큰 장벽은 '읽는다'는 것 자체의 괴로움과 읽어야 하는데 무엇을 읽어야 할지 모르는 선택의 난감함 그리고 지침의 부재이다. 이럴 때 생각해볼 수 있는 손쉬운 해결책이 바로 양서목록이나 세계명작 같은 앤솔로지를 고르거나 전문가의 서평 그리고 미디어나 세간의 평판에 의지하는 일이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선택의 문제가 해결됐다고 해서 이것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요구하는 독서의 욕망을 채워주는 맞춤형 지침이 되기 어렵고, 이 같은 양서 목록들이 과연 정당한가의 문제가 남는다.

이러한 양서들의 모음을 가리켜 정전(canon)이라 칭한다. 정전을 뜻하는 영어 '캐논'은 그리스어 카논―χανων, 영어식으로 표기하면 kanon―에서 유래했으며, 라틴어로는 '칸나(canna)'라고도 한다. 그리스어 캐논의 원뜻은 '갈대', '긴 나무막대기'였다.



지금처럼 도량형(度量衡)이 통일되지 않았던 시대에 물건의 길이를 재는데 갈대를 사용했고, 여기에서 '자(ruler)'와 '척도'라는 의미가 파생된다. 예나 지금이나 '자'가 갖는 상징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캐논이란 말은 '갈대'나 '척도'의 의미에서 벗어나 삶의 인생의 지침이나 기준을 '규범' 나아가 성경 같은 종교 경전의 정경(正經)으로, 르네상스 이후에는 성경 못지않은 가치를 지닌 모범적인 책과 아름다운 문학작품(belle lettre)을 지칭하는 단어로 외연의 확장을 거듭한다.

그리고 마침내 정전은 근대국민국가의 시대에 이르러 국가의 이념과 전통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언어사용의 모범이 되는 가치 있는 작품, 국민들에게 가르치고 고등교육기관에서 연구대상으로 삼을만한 작품들을 일컫는 문학용어로 등극한다. 20세기말 미국문학 담론은 정전 논쟁으로 뜨거웠다.

논점은 흑인과 여성과 소수자들을 배제한 백인남성 중심의 텍스트로 이루어진, 즉 비문학적 기준이 개입된 정전 체계가 과연 정당한가하는 것이었다.

정전은 엄정한 학술적 검증을 거쳐 구축된 것이 아니고 사회문화적 · 정치경제적 요인들이 작용하여 형성된 임의의 관습 체계다. 우리의 경우는 정전의 억압도 문제지만 정전을 형성하는 것이 더 문제였으며, 문학보다 더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로 인해 여기에 대한 충분한 성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장르문학을 배제하는 정전의 배타성과 엘리트주의는 지양, 극복되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장르문학 진영도 정전의 한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위대한 성과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정전을 비판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비판을 비판적으로 응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장르문학을 우리문학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성원하는 성숙한 문화의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 많이 읽어야 한다. 무시독서(無時讀書) 무처독서(無處讀書) 문화가 절실하다.

/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시민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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