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그들, 3·1운동을 말하다
[잊혀진 그들, 3·1운동을 말하다!·(2)화성 송산 독립운동의 대부 '홍면옥' 선생]"선생님, 모시러 왔습니다" 日 순사들도 공손
왼쪽부터 수형자카드에 붙어있는 홍면옥 선생 사진과 홍면옥 선생이 출옥후 운영한 대교서당 모습. /화성시 제공 |
독립만세 외치다 총상입고 끌려가
일본의사 치료 거부 강직함 '유명'
김구등과 교류 건국준비위서 활동
월북설등 '행방 묘연' 서훈 못받아
후손들은 우익단체에 고통 겪기도
"내가 수첩을 숨기면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셔. 잘했다, 못했다 얘기도 안 하고. 아직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해."
홍진후 씨 기억 속의 아버지 홍면옥은 기개가 대단했다. 화성지역에 무슨 일이 났다 하면, 순사들이 들이닥쳐 집안을 뒤지고 홍면옥을 잡아갔다. 마음이 항상 불안했다고 홍씨는 그 날의 감정을 떠올렸다.
"순사들이 나중에는 '선생님, 모시러 왔습니다'하고 정중하게 모셔갔어. 반말이라도 하면 '이 자식들이 어디다 대고 반말을 하느냐'며 호되게 야단을 치셨거든. 끌려가시면서도 말이야."
홍면옥은 송산독립운동의 대부다. 화성 송산, 서신 일대에서 명망 있는 어른이자, 불의를 참지 못하는 대쪽 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화성지역 중 송산에서 가장 먼저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그는 선두에 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제의 총탄에 쓰러졌다. 홍면옥이 총에 맞았다는 소식은 독립의 열망에 불씨를 당기며 만세운동을 거세게 촉발했다.
끌려가서도 그는 강직했다. 일본 의사의 치료를 거부했고 고문을 당하면서도 신음 한번 내지 않았다는 일화는 마을에서 전설과 같다.
"(총상 입은 곳에) 구더기가 났는데도 일본 의사 치료는 안 받겠다는 거야. 아버지 말이 '너희가 쏘고 어디다가 손을 대냐'고 말씀하셨대. 순사가 꼬챙이로 쑤시면서 이래도 안 받느냐 했는데도. 그래서 수원까지 와 조선 한의사한테 치료를 받았어. 그게 아버지의 '정의'였어."
홍면옥은 출옥 이후 일제의 감시를 받으면서도 '대교서당'을 설립했다. 대교서당에 모인 학생들은 태극기를 그리고 한글을 배웠다.
"학생들 나이가 천차만별이었어. 그중에서 형들만 따로 데려다 태극기를 가르치고, 이게 국기라고 알려줬어. 아버지는 한글, 한문에도 능통해 한학에 조예가 깊었어. 그걸 아이들한테 가르치고 그랬지."
해방 이후 김구, 박헌영 등 민족 지도자들과 교류하며 건국준비위원회, 인민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던 홍면옥은 "강원도 누이네 가서 약 먹고 오마"라는 말만 남긴 채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서당이 있던 그 동산에서 노는 척하며 계속 기다렸다고. 순사한테 잡혀가도 기다리면 늘 오셨으니까. 한참 뒤에 사람들이 홍면옥이 월북했다고 말했지. 이후의 삶은 말도 못해. 이렇게 늙어 죽을 때가 됐는데도 아버지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 한이 맺혀 있으니까."
사회주의 활동과 더불어 해방 이후 행적을 확인할 수 없는 홍면옥은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후손들은 홍면옥이 아버지라는 것을 숨기고 살아야 했다.
이혜영 제암리3·1운동순국기념관 선임연구원은 "홍면옥의 자식 중엔 경찰이나 우익청년단체 등에 본보기로 끌려가 매를 맞고 어깨가 골절돼 지금까지 고통을 겪고 있는 이가 있다. 후손들은 긴 세월 침묵하며 독립운동 서훈조차 엄두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원망이 많았는데, 지금은 집이라도 팔아 비라도 하나 세워드리고 싶어. 근데 어디에 묻혀 있는 줄도 모르니…" 이제 그것이 한이라던 홍진후씨는 지난 2015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아버지 홍면옥은 여전히 미서훈 독립운동가다(이 글은 홍진후씨의 2013년 구술조사를 바탕으로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김학석·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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