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작성한 조선미인보감 속에 수록된 수원기예조합의 기생들. 조합에 기록된 33명의 기생들은 1919년 3월 29일 화성행궁 봉수대 앞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수원박물관 제공 |
1919년 방화수류정서 지식인·학생중심 시작
상인들 가게 문 닫고 생계 위협속에서 '동참'
기생 33명도 日경찰 총칼에 굴하지않고 시위
연령·성별·직업 상관없이 전 계층서 적극 저항
경기 남부 주요도시로 '전국 투쟁' 동기 부여
이곳을 건설한 선조들도 우리가 그곳을 그리 아름답게 기억하길 원했을 테다. 하지만 1919년의 방화수류정은 우리의 기억과 다른 모습으로 기록됐다.
당시 수원은 서울 못지않게 3·1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된 지역이다.
현재 화성, 오산, 의왕 등 경기 남부 주요 도시가 '수원군'에 포함될 만큼 방대한 땅이었지만, 연령·성별·직업에 상관없이 전 계층이 만세운동에 참여해 전국 독립투쟁의 동기를 부여했다.
그중에서도 방화수류정은 수원의 만세운동이 시작된 역사적 장소였다. 1919년 3월 1일 화홍문 방화수류정 부근에서 지역의 지식인과 학생들이 중심이 된 시위가 일어났고 이 시위는 일제 식민지배 하에 웅크리고 있던 민중의 마음속 독립의 방아쇠를 당겼다.
수원 전 지역에 걸쳐 상인, 소작농, 기생 등 다양한 계층이 들불처럼 일어나 만세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3월 16일 수원면 장날을 이용해 지식인과 학생이 모인 만세시위가 다시 일어나자 팔달산 서장대와 동문 연무대에도 수백 명이 모여 만세를 불렀고 순식간에 수원군 중심 시가지였던 종로까지 시위대가 몰렸다.
일본경찰과 헌병이 이들을 강제 해산하면서 시위의 주동자들이 체포됐는데,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이번엔 '상인'들이 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가게 문을 닫고 만세 운동에 참여했고 생계를 위협받는 상황이었지만, 일본인에게 상권을 침탈당했던 상인들은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3월 23일은 수원역 부근의 서호에서 700여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번 시위의 주역은 '소작농'이었다. 일본이 운영하는 농장이 많았던 이곳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던 소작농들은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서호 인근에서 보란듯이 독립의 의지를 불태웠다.
수원 만세운동의 정점은 '기생'의 활약이다. 조선의 기생은 가무는 물론, 기예, 행의, 시, 서화 등에 능한 종합 예술인의 성격이 짙었지만 일제의 지배 하에 기생은 풍속교화를 이유로 통제받는 한편, 예술이 아닌 상업적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특히 수원기생은 '수원기예조합'이라는 틀 안에 갇혀 통제를 받았는데, 이 조합에 가입된 33명의 기생들은 1919년 3월 29일, 화성행궁 봉수당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은 수원 기생들이 자혜의원에 위생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당황한 일제 경찰이 총칼을 들이대며 위협했지만, 굴하지 않고 만세를 불렀다. 이날의 시위로 주동자였던 기생 김향화는 2개월의 감금과 고문 끝에 징역 6개월 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수원 기생의 '의리'는 기습적 만세운동 전에 이미 역사의 한 장면으로 포착된 바 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 황제가 승하하자 덕수궁 내전은 물론, 대한문 밖까지 매일 수백 명이 엎드려 통곡했는데, 1월 27일, 20여 명의 수원 기생들이 깃당목의 소복에 나무 비녀를 꽂고, 짚신을 신은 채 대한문 앞 바닥에 엎드려 '망곡례'를 행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천하다 여겼던 기생들의 만세운동은 민중에게 큰 자극이었다. 4월 15일, 화성 제암리 교회에서 일제의 만행이 벌어지기 전까지 수원 전역의 만세운동으로 번지는 동력이 됐다.
/공지영·배재흥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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