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의 한국재벌사

[이한구의 한국재벌사·80]현대-12 최대의 정경유착 의혹과 정몽헌 자살

'대북 불법송금 의혹'… 창업이래 최대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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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은 금강산관광의 새로운 육로관광을 열었지만 대북 불법송금과 정치권 비자금 의혹을 남긴 채 결국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이영하 현대아산 사장 등 임직원들이 지난 8월3일 금강산 현지에서 맹경일 아태 부위원장 등 북측 관계자 20여명과 함께 고 정몽헌 회장 15주기 추모식을 하고 있는 모습. /현대그룹 제공=연합뉴스

현대차, 현대중공업 등의 계열분리는 정몽헌 지배의 현대그룹을 위축시키는 계기가 됐다.

현대그룹 전반에 대한 시장의 불신과 건설경기 침체까지 겹쳤기 때문이었다. 또 막대한 금액을 북한에 송금한 상황에서 형제 기업들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던 점도 요인이었다.

현대그룹의 해체위기가 고조되자 "2000년 4~5월 두 달간 삼성카드 2천억원을 포함, 금융기관들이 현대건설의 돈줄이었던 현대상선에서 회수한 자금만 4천151억 원에 달해 단기차입금이 많았던 현대건설 계열은 자금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동아일보 2003년 8월 6일, [秘話 국민의 정부]<31> ⑤현대家 왕자의 난(下))

현대건설, 만기어음 결제못해 한계
국책기관·금융권 33조 지원 불구
건설·전자소유권 채권단에 넘어가



>> 현대그룹 부도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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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의 부도위기로 2000년 5월 26일에는 종합주가지수(KOSPI)가 하루 동안 무려 42.87포인트가 빠지기도 했다.

현대건설은 2000년 10월 29일 만기 어음 260억원을 결제하지 못하는 등 한계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정부는 2000년 11월 3일 부실기업 퇴출조치와 관련해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마련했다.

만기가 도래한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이 제때 상환하지 못할 때 해당 기업이 만기도래분 20%만 상환하고 나머지 80%는 산업은행이 대신 갚게 하는 것이다.

현대그룹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시장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자구노력'을 전제로 현대건설을 살리기로 한 것이다.

이듬해 3월 27일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현대그룹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을 조건으로 정부가 유동성을 지원해 출자 전환하기로 결론 냈다. 그해 5월 18일 현대건설 주주총회에서 당초 채권단의 구상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현대그룹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2000년 5월부터 2002년 9월까지 국책기관과 금융권이 현대그룹에 지원한 금액은 총 33조6천억원에 달했는데 이 자금은 주로 현대건설과 현대전자에 쏟아 부었음에도 끝내 현대건설과 현대전자의 소유권은 채권단으로 넘어갔다.

2001년 현대건설은 채권단에 의해 현대그룹에서 분리돼 현대엔지니어링 등과 별도의 현대건설그룹을 이뤘다.

2001년 3월 21일 창업자 정주영 회장이 사망했다. 항간에는 정 회장이 인생 말년의 향수병 때문에 추진했던 대북사업이 현대건설그룹을 붕괴시키고 말았다는 설이 돌았다.

현대상선 역시 대북송금을 위해 산업은행에서 빌린 4천억원을 갚느라 알짜 사업체인 자동차 운반선을 분리·매각했다. 현대아산은 사업 시작 이래 2000년 말까지 북한에 공식적으로 3억3천만달러를 지급하는 등 누적적자만 3억달러에 달했다.

정몽헌은 2000년 '왕자의 난'을 통해 현대그룹의 법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현대그룹에서 분리되고 현대건설과 하이닉스반도체가 위기에 빠지자 정몽헌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현대아산 회장으로 대북사업에만 전념했다. 그 와중에 2002년 9월에는 금강산관광의 새로운 육로관광을 개시했다.

그러나 2003년 8월 4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계동 본사사옥에서 투신자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그는 대북 불법송금과 정치권 비자금 제공의혹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었다.

정치권 비자금 제공의혹 검찰조사
남북정상회담前 '비밀 송금' 화근
투신사건후 흐지부지 역사속으로

>> 몽헌, 대북사업 전념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간의 남북정상회담(2000년 6월 13~15일)의 사전준비과정에서 현대그룹이 막대한 자금을 북한으로 몰래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통해 그 돈을 송금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한 사건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정부와 현대그룹이 공모해 불법으로 막대한 자금을 북한에 제공한 데에는 무언가 흑막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와 현대 모두 입장이 난처했지만 시원히 밝힐 수도 없었다.

북한 송금 내역 및 현대와 북한 정부 사이에 비밀리에 추진한 협상 내용 내지는 송금 관련 북한 계좌 내역까지 공개될 경우 김대중 정부가 최대치적으로 자부한 햇볕정책 무산은 물론 자칫 정권붕괴까지도 점쳐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스스로 엄청난 불법을 저지른 셈이니 말이다. 현대의 경우 돈의 출처가 밝혀지면 분식회계는 물론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비자금 제공 등 후폭풍 또한 일파만파여서 도저히 불감당이었을 것이다.('노무현자서전, 운명이다', 30판, 230~233면)

김대중 대통령은 퇴임 직전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3년에 대북송금 의혹 특검에서 현대그룹이 북한에 송금한 금액은 현금 4억5천만달러와 5천만달러 어치의 현물 등 총 5억달러인 것으로 확인됐다.

자금규모뿐 아니라 정부는 물론 북한 당국까지 연루된 희대의 정경유착사건이 불거지면서 현대그룹은 창업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정몽헌의 사망과 함께 모든 것이 흐지부지된 채 이 사건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한구 경인일보 부설 한국재벌연구소 소장·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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