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협·성적관리위 '부실 운영'
인천시교육청 관리 지침도 모호
자율에 맡기다 해석오류 가능성
지필평가 수준 가이드라인 필수

인천 신송고등학교에서 이미 출제된 대입논술 문제를 베껴 수행평가에 출제하는 일이 벌어졌다.

2학년 1학기 문학 수행평가를 치르며 논술 2문항 모두를 대입 기출문제에서 베꼈는데, 사실이 알려지자 자체 학부모 설명회와 학업성적관리위원회를 열고 재시험 결정을 내렸다.

베낀 시험문제가 사전에 걸러지지 못하고 실제 평가까지 이어진 데에는 신송고 '교과협의회'와 '학업성적관리위원회'가 부실하게 운영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출제·검증기구 부실


교육부 훈령을 토대로 인천시교육청이 작성한 '인천시교육청 고등학교 학업성적관리지침'을 보면 '교과협의회'와 '학업성적관리위원회'가 학생들의 지필·수행평가를 담당한다.

문제 출제 교사들로 구성된 교과협의회가 평가방법과 기준 등을 제출하면, 학교장(위원장), 교감(부위원장)과 교직원이 참여하는 학업성적관리위원회가 이를 승인해 치러진다.

이 두 협의기구가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서 평가의 객관성·공정성·투명성·신뢰도가 좌우된다.

이번의 경우, 교과협의회와 학업성적관리위원회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샀다. 2학년 문학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는 모두 3명. 교사 3명이 협의해 공동 출제한 문제 2문항이 모두 '베끼기'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교사 3명이 동시에 문항을 베꼈거나 아니면 다른 두 교사의 묵인 혹은 방조하에 특정 교사가 베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교과협의회가 선·후배 교사들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교과협의회와 학업성적관리위원회의 부실한 운영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됐다. 교육 당국도 이를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학업성적관리위원회도 이번 재시험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베껴 출제된 문항을 걸러내지 못했고 같은 평가 문제를 두고 여러 학급이 2일에 걸쳐 각자 다른 시간에 시험을 치른 평가 방식의 오류도 잡아내지 못했다.

■ 평가 지침도 허술


이번 사태에 대해 일선 교사들은 인천시교육청의 부실한 학업성적관리지침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재 시교육청의 학업성적관리지침에는 지필 평가와 수행 평가에 대한 지침이 명시돼 있다.

지필 평가와 관련된 지침은 반드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비교적 자세히 명시돼 있다. 반면 수행평가 관련 지침은 모호하거나 두루뭉실해 해석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필평가와 관련해서는 교사별로 문항 수를 분담해 출제하는 것을 금지하고 반드시 공동출제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참고서 문제를 전재하거나, 일부만 변경해 출제하고, 전년도 출제문제를 그대로 제출하는 일 등도 구체적으로 금지한다.

하지만 수행평가와 관련된 지침은 지필평가와 달리 구체적이지 않아 이번 사태가 빚어졌다는 게 교사들의 얘기다.

교육계의 한 전문가는 "아무리 교사의 자율성과 전문성에 맡겨두는 수행평가라 하더라도 지필평가와 유사한 방식의 평가를 시행할 때는 그에 준하는 기준을 적용하는 등의 노력은 상식적으로 필요하다"며 "지침 해석의 오류를 줄이는 방향으로서 관련 규정을 고치거나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