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그늘 쌍용차 그리고 평택

[희망의 그늘 쌍용차 그리고 평택·(2)흔들리는 지역사회]공사장 내몰린 아빠와 아들… 내 이웃의 삶이 무너졌다

나는 평택사람이자 쌍용차 직원②
입력 2020-02-12 22:19 수정 2024-06-28 13:41
지면 아이콘 지면 2020-02-1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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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동아車 칠괴동 터잡은뒤 지역경제 근간 역할
2009년 2397명 실직 발생… 동네 상권까지 '치명상'
"밥봉사 회장, 동료들 괴로움 보다못해 스스로 퇴사"
법정관리 신청했을땐 170개 시민단체 '회생 목소리'
시청서 '살리기 운동본부' 궐기대회 2만5천명 집결

# 그날이 바꿔놓은 '일상의 풍경'

평택 토박이면서 소사벌 상업지구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조성훈(44)씨는 '쌍용차 사태'를 묻자 10년 전 어느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2009년 평택의 한 건설회사에서 일했던 조씨는 일용직 건설근로자를 고용하고 관리하는 일을 담당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력사무소에서 소개받은 여러 명의 근로자를 만났는데, 그 중 회색점퍼를 입은 한 남자가 유독 눈에 띄었다. 

 

점퍼 앞뒤로 '쌍용차' 로고가 박힌 회색 점퍼는 평택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쌍용차 작업복이었다. 그는 고등학생 즈음 돼 보이는 남자와 함께 왔는데,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부자(父子)가 함께 일하러 현장을 찾아오는 건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라 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나요. 특히 같이 온 아들이 고3이라 혹여 다칠까봐 자꾸 신경이 쓰였죠."



당시는 쌍용차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하면서 노동조합과 팽팽하게 맞서던 때였다. 그때의 기준으로 그는 '산자'였다. 

 

하지만 살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회사가 공장가동률을 줄이면서 그는 3일에 1번꼴로 근무했다. 

 

턱없이 줄어든 월급보다 급한 건 고3 아들의 대학등록금이었다. 그래서 일이 없는 날, 작업복을 입고 건설현장에 나왔다. 아들의 손을 잡고.

"20일 정도 우리 현장에서 일했어요. 아버지가 공장에 나가 건설현장에 오지 못할 때도 아들은 나와서 일을 했어요. 현장에서 꼭 안전화를 신어야 하는데, 그냥 일을 하더라구요. 그게 마음이 아파 내가 아이한테 안전화를 사줬어요. 등록금을 모으려면 다른 현장에 가서도 일할 것 같아 걱정이 됐거든요."

안전화를 사주고 조씨는 마음이 복잡했다.

"사실 현장에서 회색 점퍼를 봤을 땐 좀 의아했어요. 평택에서 쌍용차 직원은 중산층이거든요. 당시만 해도 평택에 쌍용차 말고는 대기업이 없었으니까. 월급도 우리네보다 훨씬 많이 받고. 예전에 쌍용이 잘 나갈 때는 평택 서민들이 은근히 시기도 많이 했죠. 또 돈 좀 잘 번다고 쌍용 직원들이 식당 같은 데 와서 건방지게 굴기도 해서 안 좋은 인상도 있었고. 그런데 하루아침에 멀쩡하던 직장이 저렇게 흔들리고, 오죽하면 건설현장에 아들을 데리고 나왔을까 싶기도 하고, 그 아버지 심정이 어땠을지…"

2009년 쌍용차 사태 때 평택시가 추정한 실직인원은 약 4천427명이다. 실직자 2천397명이 발생한 쌍용차를 포함해 협력업체까지 모두 합한 수다.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충격이었다. 

 

오직 '쌍용차'외에 먹거리가 없는 소도시에서 대규모 실직은 치명타였다. 실직자가족, 동네 상권까지 고려하면 피해 범위는 상당했다.

1979년 동아자동차가 평택 칠괴동에 터를 잡고 1988년에 쌍용자동차로 이름을 바꾼 후 쌍용차는 평택 경제의 근간이었다.

2009년만 해도 쌍용차 직원 7천400여명 중 4천500여명이, 협력업체 직원 중 5천500여명이 모두 평택시민이었다. 쌍용차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근로자의 70~80%가 평택시민이란 점은 지역경제와도 직결된다.

실제로 시가 추산한 이들의 소비액은 엄청났다. 하루 평균 2억3천여만원, 한달 기준 70여억원이었고, 연간으로 치면 1천500억원 가량을 평택지역에서 소비했다. 

 

시민의 입장에선 쌍용차의 위기는 곧 서민경제의 위기였고 직원들의 어려움은 내 이웃의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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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 때마다 도움의 손길 건넨 지역주민들

"에휴, 상하이차 오기 전까지 경기가 아주 좋았지. 특히 우리 같은 장사는 먹고 살만 했어."

평택 통복시장 상인회장이자, 30년째 식자재 도매업을 하는 임경섭씨는 쌍용차의 위기를 화두로 꺼내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쌍용차는 상하이차가 인수하면서 위기가 온 것이고 경영을 잘못한 걸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뒤집어쓴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내가 납품하는 곳뿐 아니라 평택시내 음식점, 술집마다 쌍용차 직원들로 꽉꽉 채워졌다고. 근데 상하이차가 인수한 뒤 투자도 안 하고 기술만 빼먹고, 엉망으로 운영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사실 이때부터 이미 힘들어졌어. 쌍용차도, 우리도 같이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인구 40만명 조금 넘는 작은 도시에서 5천~6천명의 쌍용차 직원은 정말 많은 수예요. 가족까지 합하면 진짜 많지."

임씨가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 건 단지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서만은 아니다. 그는 쌍용차와 인연이 깊다.

"2009년 파업하기 1~2년 전에 매주 일요일만 되면 쌍용차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리 매장에 물건을 사러 오더라고. 한두 번도 아니고 매주 오는 것이 신기해서 물어봤지. '연탄길'이라는 사내 봉사동아리 소속 직원들인데, 주말마다 남부 복지관에 밥봉사를 하러 간대요. 그게 기특해서 나도 같이 봉사를 시작했지요."

1년이 넘게 지역봉사를 하며 임씨와 직원들은 정을 쌓았다. 그러던 중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함께 봉사하던 직원들 상당수가 정리해고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때 연탄길 동아리 회장은 진짜 봉사심도 깊고 좋은 사람이었어. 본인은 (구조조정) 명단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동료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다가 스스로 그만둬버렸지."

임씨에게 쌍용차 직원들은 이웃사촌이었다. 직원들이 옥쇄파업을 할 때, 굴뚝 위에 올라갔을 때, 구속됐을 때도 마음이 무척 아팠다고 했다.

"파업이 한창일 땐 현장에 식자재도 대주고, 나중에 구속됐을 때 면회도 다녀왔어요. 봉사를 같이 한 사람들도 있고, 원래 알고 지낸 동네 선후배들도 있으니까. 같이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또 무급휴직했거나 해고된 직원들이 당장 생계가 막막해 하는 걸 보니 안타까워서 우리 시장 상인들한테 소개해 몇 명은 시장 가게에서 일했지. 나도 2명 정도 채용해 매장에서 같이 일하기도 했고."

"그 친구들이 참 방황을 많이 했어. 매달 몇백만원씩 받던 사람들이 시장에서 많이 줘봐야 150만원인데, 적응이 참 쉽지 않았겠지. 우울증 걸리는 것도 많이 봤고. 아는 동생도 하나 죽었어요.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려요."

임씨 뿐이 아니었다. 쌍용차가 위기에 놓일 때마다 평택 시민들은 '쌍용차 살리기'에 나섰다. 

 

2006년 상하이차가 인수하기 전, 2009년 쌍용차 사태 전후 등 어려울 때마다 돕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서민경제를 지탱하는 주춧돌이기도 했지만, 함께 사는 이웃을 지키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았다.

쌍용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때 평택시민연대, 학교, 상인연합회,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등 범시민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파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때에는 지역 내 170개 시민단체가 동참해 '시민 목소리 릴레이'를 진행하며 노사, 정부, 채권단에 쌍용차 회생을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지역의 원로들과 정치인, 시민단체 등이 모여 구성한 '쌍용차살리기운동본부'에서 기획실장으로 활동했던 이동훈 평택발전협의회 회장은 시청 광장에서 열었던 궐기대회를 이야기했다. 

 

"일반적으로 궐기대회를 열어도 몇천명 오면 진짜 많이 오는 수준이었는데, 이때 2만5천여명이 왔어요. 쌍용차는 오랫동안 우리 지역에 뿌리내린 토종기업이고 근로자 상당수가 평택사람이니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다들 한목소리로 '정부가 쌍용차를 살려내라'고 외쳤고, 쌍용차 타기 운동도 벌이고, 호소문도 배포하고…"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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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
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
편집: 김영준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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