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취업 격무 '안타까운 사망'
뒷짐 고용부 그제서야 업무량 줄여
누구 한 명은 죽어 나가야
제도 든 정책이 든 바뀌는 나라

그 일로 버스 기사는 버스에서 내려 지금 장애인들이 몰려와 버스를 못 가게 막고 있다고 어떻게 좀 해달라고 연신 버스회사와 경찰서에 전화했고 시민들은 버스를 막고 있는 우리에게 '데모를 하려면 도청에 가서 하지 왜 죄 없는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느냐'며 한마디씩 했다.
길어봤자 30~40분이었다. 장애인들은 평생을 불편함 속에서 살아가는데 고작 그 시간을 불편하게 했다고 곱지 않은 시선과 비난 섞인 말들을 들으면서 참 씁쓸했었다.
며칠 전 동료지원가 고 윤은주님의 1주기라 그가 잠들어 있는 곳에 다녀왔다. 동료지원가는 회복된 장애 당사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이 필요한 다른 장애인의 치료와 회복을 지원하는 사람이다.
고인은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료지원가 의무교육을 용인에서 서울에 있는 '발달장애인맞춤훈련센터'까지 3일 내내 다녀야 했다. 새벽 5시께 서울로 출발해야 아침 9시에 시작하는 교육을 들을 수 있었다.
결국 고인은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마지막 교육을 마친 다음 날 새벽 고열로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호흡곤란이 와서 패혈증으로 계속해서 병원을 옮겨야 했다. 옮기는 과정 중 척수 손상이 생겨 두 번의 수술을 받았고, 이동 중 패혈증이 다시 악화해 사망하게 되었다.
같이 일해 본 적은 없어 잘은 모르지만 고 윤은주님은 지역 장애인을 위해 활동하고 싶은 의지가 컸으며, 특히 장애여성을 많이 상담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2019년에는 뇌병변장애인 설요한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고인은 2019년 4월1일부터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으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활동했다. 그는 월 60시간 근로시간에 임금 65만9천650원으로 한 달에 4명의 참여자를 발굴하고 1명당 5번씩 만나 상담해야 했다. 그리고 1명당 8개의 서류를 작성해야 했다.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사업수행기관인 센터는 그의 임금 일부를 공단에 반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었던 설요한님은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해 센터 직원들의 손도 빌려야 했다. 게다가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공단에 임금 일부를 반환해야 했으니, 그의 부담감은 매우 컸을 것이다. 이러한 압박감 속에 그는 센터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민폐만 끼쳤다'는 문자를 보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으로 고용노동부는 실적 압박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2020년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 변경 내용'을 통해 동료지원가가 연간 달성해야 하는 참여자 인원을 48명에서 20명으로 변경했다.
우리 장애인들 사이에서는 '우리나라는 누구 한 명 죽어 나가야지 제도든 정책이든 바뀐다'는 소리를 우스갯소리처럼 하는데 이 말은 정말 뼛속 깊이 아픈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 사회에 무언가 한 가지를 요구하고 수렴이 되기까지 동료 한두 명씩 잃어야 했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하루빨리 이 나라의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한 제대로 된 차별금지법이 제정돼 더는 동료들을 잃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난 동료들과 함께 이 사회와 싸울 것이다.
/김동예 수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