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도시는 없다
[통큰기사-아이를 위한 도시는 없다] 과도한 주담대·집값 부담이 부른 '화'… 0으로 향하는 경기·인천 출산율
'센 집값' 저출산 사회… 슈퍼대디·슈퍼맘 힘 빠진다
2013년 이전까지 영유아 전 계층 무상보육은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에 시혜적 차원 복지로 정부의 보육 지원이 이뤄지다 이후부터 '육아·보육'은 보편적 복지의 대명사가 됐다.
낳으면 길러주겠다는 국가의 약속에도 각 시·도의 출산율은 누가 먼저 '0'에 다다를지 시합이라도 하듯 바닥으로의 일방통행 레이스다.
보건복지부와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국비기준 보육예산은 2000년 1천991억원에서 2020년 5조8천68억원으로 20년 동안 29.2배 증가했다. 미취학 자녀 1명을 기르는 데 1년에 1천만원이 든다고 단순 가정했을 때 우리나라가 이 보육예산으로 1년에 키워낼 수 있는 아이의 수는 지난해 5천806만8천명으로 대한민국 전체 인구수와 비등하다.
영유아 보육교육의 공공성 확보와 자녀양육의 질 향상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면서 보육예산은 지속 증가했다. 다가오는 2022년은 덜 낳고 덜 기르는 세태가 국가 예산에 반영된 보육예산 삭감의 원년이다. 정부는 다음 해 국비 기준 보육예산으로 올해 5조9천597억원 보다 1천515억원 줄어든 5조8천82억원을 책정했다.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와 인천시는 출산율 저하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에서 시작된 저출산 문화가 제반 환경이 유사한 경기·인천 지역으로 물밀듯이 넘어 들어 왔고, 과도한 주택담보대출과 집값 부담이 출산과 양육 욕구를 집어삼켰다.
# 수도권의 서울화 현상
경기도는 전통적으로 출산율이 높은 곳이었다. 현재도 수도권 3개 광역지자체 중 유일하게 합계출산율 통계에서 전국 평균을 웃돈다. 최근 몇 년치 통계만 비교해선 의미가 없다. 문제는 속도다.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저출생시계'가 여타 광역지자체에 비해 너무 빨리 간다.
2020년 경기도의 합계출산율은 0.878이다. 합계출산율이란 15~49세 여성 1명이 평생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나타낸 지표다. 연령별 출산율의 총합으로 신생아 수 증가의 척도로 사용한다.
2000년 경기도의 합계출산율은 1.628명이었다. 여성 경기도민 2명이 아이를 3명 이상 낳았었다고 해석하면 된다. 경기도의 합계출산율은 20년 만에 0.750명이 하락했다. 이 시기 서울은 1.275명에서 0.642명으로 0.633명 하락했고 인천은 1.473명에서 0.829명으로 0.644명 떨어졌으므로 낙폭이 큰 곳은 단연 경기도였다.
서울 따라가는 수도권
경기도 합계출산율은 전국평균 상회
2000년 1.628→2020년 0.878명 급락
서울·인천보다 '낙폭'이 더 크기도
인접 대도시 저출산 문화 확산 분석
만혼화·출산 인센티브의 감소 탓도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경기로 유입되는 인구가 없었다면 경기도는 성장하지 못했다. 같은 인구라도 아이를 키우는 젊은 가구의 소비 활동이 더 활발하다. 자체적인 인구 생산 능력이 떨어지면 당연히 교육서비스, 도매·소매 등 여러 서비스업의 성장과 고용에 음의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 경기본부가 2019년 펴낸 '경기지역의 출산율 급락 현상 분석: 원인과 파급효과'를 보면 저출생의 원인에는 문화적 요인이 있다.
이 논문을 작성한 하준경 한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와 정승기 전 한국은행 경기본부 경제조사팀 과장은 서울 등 인접 대도시의 저출산 문화가 경기도(인천시)로 확산했으며, 경기도의 출산율 급락현상은 만혼화에 따른 과도기적 효과, 출산 인센티브 감소의 결과 등 복합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 문제의 근원은 '집값'
새도 알을 낳기 전에 둥지부터 짓는다. 마음 놓고 다리 뻗을 둥지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저출생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홀로 살 공간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청년 세대에게 아이 낳아 기르라는 구호는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는 유령'일 뿐이다.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통계시스템을 보면 올해 3/4분기 지역별 주택구입부담지수에서 경기도가 처음으로 100을 넘어섰다.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중간소득 가구가 표준대출을 받아 중간가격 주택을 구입했을 때 상환 부담을 나타내는 지수다. 지수가 높을수록 주택 구입 부담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신 주택구입부담지수에서 경기도는 102.2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은 73.5다. 억 소리 나는 집값의 서울은 182, 인천은 80.5를 기록했다. 10년 전인 2011년 3/4분기 경기, 인천, 서울의 주택구입부담지수는 각각 80.3, 66.9, 117.8이었다.
'둥지 없는' 청년세대
경기도 주택구입부담지수 102.2
전국평균 73.5와 대조… 인천 80.5
연간소득 대비 대출금액도 높아
보육예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지자체 재정정보 취합 필수' 조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 탓에 둥지 없는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 육아를 포기한 '요즘 것들'이라며 혀를 끌끌 찰 순 없다. 하준경 교수는 논문에서 '집값이 상승한 곳일수록 출산율 하락폭이 크다. 주거비가 높을수록 결혼이 쉽지 않고, 또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수준이 높아지면 자녀(계획) 수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입증했다.
하 교수는 저출산과 주택담보대출의 반비례 관계를 '집값 효과'라고 명명했다. 여기다 두 가지 지수를 더 끌어다 경기·인천의 저출산의 요인을 입증할 수 있다. 연간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Price to Income Ratio)과 연간소득 대비 대출금액 비율(LIR·Loan to Income Ratio)이다.
경기도는 연간소득 대비 대출금액 비율이 2011년 7월에서 2021년 7월 10년 사이 1.34 오른 4.45로 나타났다. 이는 전국 평균 3.69, 서울 4.33을 웃도는 수치다. 경기도민의 집값 부담이 타 수도권 지자체보다 심각하다는 실증적인 결과다.
하 교수는 "주거비 부담이 저출산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만큼 집값 안정 노력이 필요하다"며 "저출산은 먼 미래의 문제일 뿐 아니라 당장 내수를 위축시키는 일이므로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절실하다. 유럽 여러 나라는 저출산을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예산을 늘리는 등 적극 대응해 추세를 반전시켰다. 우리도 늦기 전에 과감히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보육예산만 늘려선 안 된다. 지난해 12월 예산정책연구에 '지방정부 보육예산 분석' 논문을 낸 김현숙 숭실대 경제통상대학 경제학과 부교수와 김나영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의 제안이다.
분산된 보육·아동사업 예산은 가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예산 규모와 내용을 파악해 효율적으로 중앙과 지방의 역할을 분담하기 어렵다. 내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이들은 방만한 예산이 공모전과 의미 없는 위원회 회의 개최 비용으로 쓰이는 동안 정작 주인공인 우리의 아이들은 병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17개 광역지자체, 236개 기초지자체별 재정정보 취합이 필수"라며 "가칭 영유아 보육·교육재정센터를 설치해 시·군·구 단위 영유아 자료를 수집하고 취합하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정책 분류 가능한 수준에서 각 지역의 재정자료를 일관되게 집계해야 새는 돈이 없다"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글 : 손성배, 배재흥기자
사진 : 김금보기자
편집 : 김동철, 장주석차장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꼭 2년의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콘텐츠는 독자들로부터 사랑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좀 더 긴 호흡으로, 더 노력과 정성을 들여서,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보자는 각오로 '통 큰 기사'를 기획했습니다.한 달에 한 번, 2020년 1월 '판교 리얼리티'로 시작해 이번 '아이를 위한 도시는 없다'까지 24편의 통 큰 기사를 연재했습니다. 독자들의 사랑 덕분에 한국편집상, 이달의 기자상, 이달의 편집상 등 굵직한 상을 받는 기쁨도 누렸습니다.이제 '통 큰 기사'라는 이름의 기획을 마무리 합니다. 새해에는 더 좋은 기획, 더 정성 가득한 콘텐츠로 독자들을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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