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스타트업이 그렇듯, 이트너스의 시작도 미미했다. '이게 과연 될까'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는 없어도 생존이 달려있기에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실패할 지도 모르지만 아주 작은 가능성에 기대 달려오길 24년, 지금은 매출 1천억원에 달하는 기업의 대표로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 판교 한복판에 섰다.
새해의 시작점, 판교에 있는 이트너스 본사에서 만난 임각균 대표이사는 "20년 이상을 노력해왔는데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라면서도, 새해에 시도할 프로젝트를 이야기할 때는 목소리가 한껏 높아졌다. 판교에 대해 말할 때는 자못 진지하게 개선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월급쟁이, 1천700여 기업들의 '1번 파트너' 되기까지
하나의 기업을 운영하는 데는 아주 많은 일들이 수반된다. 직원들에게 정확하게 월급을 줘야 하고 각종 후생복지도 이뤄져야 한다. 거래처 대금이 밀리거나 물건이 제때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막아야 한다. 실수 없이 해내야 하지만 신경 써야 할 일은 갈수록 늘어나고, 하나하나 사람 손으로 하다 보면 간혹 틈도 발생한다.
이트너스는 이런 기업들의 수고로움을 덜어주는 경영지원플랫폼 기업이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필요한 복지를 적절하게 제공하는 일을 이전에는 모두 사람 손으로 일일이 해야 했다면, 이를 디지털화할 수 있게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게 이트너스의 주 업무다.
기업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여러 서비스도 제공하는데, 이를테면 해외에 주재하는 기업 직원들에게 김치 등 국내 물품을 배송해주는 일이다. 이트너스와 손잡은 기업만 1천700여 곳. 말 그대로 기업들을 위한 기업이다.
지난해에는 각 산업별 발전에 기여한 기업인들에게 수여하는 산업포장을 받는가 하면, 중소벤처기업부·중소기업중앙회가 선정한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 분야에선 최고임을 인증받은 셈이 됐지만 24년 전 창업에 뛰어들 때만 해도 막막했다. IMF 바람을 피하지 못했던 월급쟁이가 가진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 하나뿐이었다.
"원래 월급 주고 비용을 정산하는 업무는 지극히 아날로그였는데 1998년 그때쯤이 기업들 사이에선 아웃소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때였어요. 이미 해외 유명 기업에선 직원들 월급을 주거나 하는 일을 자체적으로 하지 않고 아웃소싱화하기도 했고. 처음엔 정산 업무를 대행하는 것으로만 시작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영역을 조금씩 넓혀간 거죠. 원래 다니던 기업에서 경영 혁신 업무 등을 담당하기도 했어서, 그래도 이런 인사·총무 부문의 디지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자신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거죠."
임 대표는 그렇게 이트너스의 시작점을 회상했다.
월급·후생복지 등 기업의 수고 덜어… 작년 산업포장 등 이 분야에선 최고 인증
고객사 사장님 인도에 김치 보내기 부탁해 '고군분투'… 세계 93개국에 물품 배송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점을 끊임없이 찾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면서 이트너스는 성장을 거듭했다. 2003년 인도에 김치를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게 대표적이다.
임 대표는 "우리 고객사 중에 어떤 기업 사장님이 2003년에 인도에 갔다. 한국 음식이 해외에 많이 없을 때였으니 직원들이 '김치찌개라도 좀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더라. 어떻게 좀 보내줄 수 있겠냐는 사장님 얘기에 포기김치를 잘 포장해서 보냈다. 그런데 정작 인도에선 감감무소식이었다. 통관에만 2주가 걸려서였다. 그 사이 김치가 다 쉬어서 비닐을 여는 순간 펑 터졌다고 하더라"라며 "아차 싶었다. 그 일 이후에 아이스팩을 넣었을 때 스티로폼 속 냉기가 얼마나 유지되는지 실험을 계속 했다. 그게 해외 주재원들에게 물품을 보내주는 서비스의 시작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트너스에선 전 세계 93개국에 국내에서 판매하는 웬만한 먹거리, 생활 물품 등을 배송해준다. 교보문고와 협업해 원하는 도서를 보내주기도 한다.
#"맨땅에 핀 꽃, 판교… 스타트업 성장 위한 진정한 터전 필요해"
서울에 있던 이트너스는 2012년 판교에 자리 잡았다. 올해로 '판교 시대' 10년을 맞는다. (사)판교테크노밸리1조클럽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기도 한 임 대표는 맨땅이었던 판교가 어느덧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으로 거듭나기까지, 변화를 두 눈으로 봐온 판교 1세대 기업인이다.
"우리 기업이 디지털 전환을 주 업무로 하는 곳이다 보니 IT 개발자들이 많이 필요하다. 여기에 오면 개발인력을 좀 더 쉽게 모집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왔다. 판교 개발 초창기여서 식당 하나 제대로 없을 때였다"고 10년 전 판교에 처음 입주했을 때를 거론한 임 대표는 "그런데 어느새 채워지더라. 기업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판교의 기운'이랄까, 그런 게 생기는 것 같았다. 실리콘밸리처럼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판교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아쉬움도 없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타트업'의 사전적 정의를 언급했다.
임 대표는 "설립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생 벤처기업을 스타트업이라고 한다. 성장 가능성이 큰 아이디어는 있지만 자금이 부족한 게 특징이다. 공공이 조성한 판교테크노밸리의 시작점은 이런 기업들을 위한 것이었을 텐데, 지금 사실 판교는 돈이 있어야 진입할 수 있는 곳이 됐다. 판교에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 성공할 수 있는 기업이 성공하는 공간이 됐다. 다시 말해 '돈 넣고 돈 버는' 게임 공간이 된 것"이라며 "공공에서 스타트업을 지원한다지만 공공에서조차 실적을 신경 쓰다 보니 가만히 보면 관리·감독이 너무 많다. 지원을 받기 위한 창업으로 변질되는 경우마저 있다. 미숙한 기업들이 와서 10년 정도 있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매우 넓은 터전이 필요하다. 진정한 스타트업을 위한, 판교보다도 큰 밸리가 경기도에 필요하다. 공공에서 주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식당 하나 제대로 없던 개발 초창기… 기업들 하나둘 모이면서 '판교의 기운' 생겨
공공 스타트업 지원 실적에 신경 쓰다보니 관리·감독 많아… 지원 위한 창업으로 변질
새해 목표를 묻자 임 대표의 목소리 톤이 한결 높아졌다. "크게 두 가지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한다"며 곧장 '감동타임'과 '영차영차' 두 가지 서비스를 설명했다. 감동타임은 기업들을 위한 선물 큐레이션 서비스다.
이에 대해 임 대표는 "MZ세대 직원들을 위한 서비스가 될 것"이라며 "이전에는 회사에서 명절 선물 같은 것을 그냥 일괄적으로 주지 않았나. 그러다 보니 '뭐 이런 걸 주느냐'는 불만도 나오고, 회사에선 기껏 돈 썼는데 직원들이 싫어하니 당혹스럽고. 감동타임은 회사에서 예산을 정해주면 그에 맞게 이트너스가 제품을 추려주고, 그중에 직원들이 각자 선호하는 물건을 고르는 시스템이다. '취향존중' 서비스"라고 말했다.
영차영차는 업무용 차량 상태에 무관하게 내부 규정상 주기적으로 이를 교체해야 하는 법인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했다. 상태가 우수한 차량을 이트너스가 직접 사들여 원하는 고객사에 보증 판매하는 서비스다.
"법인에서 꼼꼼하게 관리해온 만큼 차량 상태가 우수한 데도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곳들이 적지 않다. '영차영차'는 오랫동안 함께할, 새차 같은 좋은 차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이트너스가 고객사들을 위한 하나의 플랫폼이 되려는 것"이라는 게 임 대표의 설명이다.
매번 새로운 도전에 나서온 임 대표는 "그런 의미에서 이트너스는 스타트업"이라며 "고목 뿌리에서 새로운 줄기가 뻗어 나와 또 다른 나무가 되지 않나. 역사는 20년 이상 됐지만 해왔던 일을 계속 해오면서 이걸 기반으로 새로운 일들을 계속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트너스, 임 대표의 나무는 오늘도 새롭게 자라고 있다.
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 임각균 대표는?
▲ 1964년생
▲ 1989년 동국대학교 산업공학과 졸업
▲ 이트너스(주) 대표이사, 성남상공회의소 상임의원
▲ 주요 포상
- 2012년 대한상공회의소 기업혁신대상 국무총리상
- 2015년 일자리창출유공 정부포상 대통령 표창
- 2019년 국가생산성대상 국무총리 표창
- 2020년 가족친화인증기업 대통령 표창
- 2021년 중소기업유공자 정부포상 산업포장, 제8회 행복한 중기경영대상 대상, 4분기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