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묵 인천콘서트챔버 대표 (10)
개항기 인천 근대 음악을 꾸준히 선보인 이승묵 인천콘서트챔버 대표가 24일 오전 인천 자유공원에서 인천 내항을 바라보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으로 포즈를 취했다.

일제 강점기 인천 용동에는 기생들이 적(籍)을 두었던 조합인 권번(券番)이 있었다. 이화자(李花子·1918?~1950?)는 이곳 용동 권번의 대표적인 예인 가운데 하나였다. 권번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이화자는 가수로 발탁됐고 레코드 취입과 함께 국내외를 누볐다.

스타가 됐지만 이화자의 삶은 마냥 밝지 않았다. 여성은 지금도 약자로 여겨지는데, 그때는 여성 예술인에 대한 대접이 더 나빴다.

개항기 인천의 근대 음악을 발굴·수집하고 또 공연으로 만들고, 다시 앨범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인천콘서트챔버가 최근 이 여성예술인 이화자의 삶과 음악에 다시 빛을 비추는 작업을 마쳤다. 이화자의 노래를 음악극으로 만들었고, 최근 앨범도 냈다.

이승묵 인천콘서트챔버 대표 (12)

2015년부터 이러한 소중한 활동을 이어오는 인천콘서트챔버를 이끄는 이승묵(36) 대표를 지난 24일 인천 제물포구락부 인근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인천시 유형문화재인 제물포구락부는 1901년 인천에 살던 외국인들의 사교 모임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이승묵 대표는 검은 뿔테 안경과 단정한 정장 차림에 깨끗한 구두를 신고 약속 장소에 나왔다. 옛 '모던보이'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의 단정한 모습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보는 이에게 호감을 준다. 인사를 나누면 바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고, 이야기를 나누면 그의 작업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그의 활동을 지지하는 팬이 될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의 패션은 남성 패션잡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화자의 노래 음악극으로 만들고 앨범도… 옛 건물 찾아다니며 연주
개항기 소외된 사람, 나아가 여성 예술인의 음악 들여다보는 작업
달걀로 바위 쳐보고 싶은 마음, 무작정 역사학자 등 만나 묻고 배워


그는 왜 이화자에 집중했을까. 이 대표는 "개항기 소외된 사람들을 살펴보고자 했고, 특히 더 소외된 사람들이었던 여성, 나아가 여성 예술인의 음악을 들여다보고자 한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화자는 자신의 음악을 '자서곡'(自書曲)이라는 형태로 구사했는데, 이 또한 당시 사회의 모습을 짐작해보기에 적합했다고 한다.

이원규 소설가의 설명을 빌리면 "이화자의 노래에는 민족수난기 집단경험과 고난, 슬픔으로 젖은 집단 무의식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인천 권번의 기생으로 살다가 밤하늘의 별처럼 찬연히 떠올라 한 시대를 풍미하고 샛별 지듯 허무하게 사라져 간 그의 생에는 그래서 더욱 우리를 애틋하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화류춘몽', '화륜선아 가거라', '어머님 전상백' 등 8곡을 재해석해 연주했고, 음악극으로 공개했다. 그리고 이번 앨범에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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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지금은 음악 연구자와 공연 기획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연주자였다. 자신을 인천 악사(樂士)로 소개하기도 한다. 인천 간석동에서 태어나 경인교대부설초등학교, 구월중, 동인천고를 나온 토박이인데, "악기를 배워두면 멋진 중학생이 될거야"라는 엄마의 말씀을 듣고 드럼을 배우기 시작해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됐다.

중학교 시절 동네 음악 학원에서 폐타이어를 두드리는 체계적이지 못한 교육 방식에 답답함을 느껴 무작정 인천시립교향악단을 찾아가 드럼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 타악기 연주 단원을 만난 일도 있다. 고교 졸업 후 음대에 진학해 연주자의 길을 걸었다.

그는 대학 졸업 이후 5년여를 평범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했는데, 어느 날 연주 도중 객석에서 졸고 있는 노신사를 발견하며 충격에 빠졌다. 그날 이후 그는 "내가 지금 누굴 위해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진짜 음악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자연과학과 철학, 종교 서적을 탐독하며 수년간 답을 찾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자신이 해답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음악'에 집중하기로 했다.

"너무 우주를 들여다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더 내 음악을 더 열심히 잘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향 인천에서 무언가 제대로 된 활동을 시작해보자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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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어디서 봤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한 문구가 있었다. "서양 문물이 인천을 통해 들어왔다"는 문구였다.

2015년 인천콘서트챔버를 결성했다. 인천의 근대 개항기 음악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우선 자신이 좋아하는 바로크 음악과 인천의 이야기를 엮어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고, 인천의 버려진 여인숙이나 옛 양조장 건물, 옛 얼음창고 등 근대건축물을 개조한 카페, 마을 주민이 모이는 소극장 등을 찾아다니며 연주를 했다. 그렇게 최근까지 작품활동을 이어나갔다.

인천의 음악을 공부하는 일도 꾸준히 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려움과 만났다. 제대로 정리된 자료가 부족했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해도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 대표는 "달걀로 바위를 쳐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던질 달걀도, 내려칠 바위도 없었다"고 했다. 무작정 지역에서 활동하는 역사학자와 향토 사학자를 한 분 한 분 찾아다니며 만났고, 묻고 배워 확인했다. 아예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해 개항기 음악과 근대 음악을 연구하는 민경찬 교수를 만나 공부를 이어가기로 했다.

지난해 초 그가 내놓은 앨범 '인천근대양악열전(仁川近代洋樂列傳)'이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격변의 시기인 근대 개항기 인천을 통해 우리나라에 유입된 서양 음악을 5년여에 걸쳐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를 찾아 정리했다. 앨범에는 1882년부터 1941년까지 모두 15곡의 음악을 담았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국제 관례상 미군 군악대가 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양키 두들'과 개신교·천주교·성공회의 종교음악, 독립신문에 언급된 '제물포 애국가', 한국에 묻힌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가 작곡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국가인 '대한제국 애국가' 등이 앨범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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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록을 찾고 채집하고 다시 기록하는 자신의 이러한 활동을 인천에 꼭 필요한 자신의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제가 하는 활동이 오늘을 사는 사람들을 위한 활동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너무 먼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훗날 누군가를 위해 기록하고 채집하고 남겨놓는 게 제 과제인 것 같아요. 앞으로 '인천 근대 음악 통사'를 남겨두는 게 제 목표입니다. 인천 근대음악 통사를 통해 그동안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요. 해야 할 것이 아주 많아 행복합니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 이승묵 대표는?

▲ 인천콘서트챔버 대표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음악분야 심의위원
▲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음악학과
▲ 인천광역시 시정홍보기여상(2017년)
<주요공연>
2016~2018 원더풀 동인천
2018~2021인천근대양악열전
2021 인천근대양악열전, 역사음악이야기 근대음악 콘서트, 음악극 이화자전, 음반 이화자 다시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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