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소·항만 노동자들 '애환' 고스란히… 깊이있는 연구 필요

일제 강점기 인천 노동사 주목해야·(상)

인천에 남은 일제 잔재 건축물 신흥동3
28일 오후 인천시 중구 신흥동에 위치한 일제 강점기 시절 정미소 노동자들이 묵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택 모습. 2022.2.2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일제 강점기 항일·반제국주의 운동으로 이어진 인천 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을 기억해야 합니다."

3·1절을 하루 앞둔 28일 오전 10시께 찾아간 인천 중구 신흥동행정복지센터 인근에는 낡은 일본식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 일대는 대한제국 시기에 바다를 메워 만든 매립지로, 1910년 전후 리키다케(力武)정미소, 가토(加藤)정미소, 오쿠다(奧田)정미소 등 일본의 정미 업체들이 속속 터를 잡았다고 한다.

역사학계는 당시 정미소 소속 조선 노동자들이 묵었던 숙소로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이 일본식 건물들을 지목하고 있다.



인천 지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인천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 장회숙 대표는 "정미소에서 일했던 조선 노동자들은 일본인 노동자와 비교해 임금 차별을 겪었다"며 "여러 사료를 살펴볼 때 조선 노동자들은 임금 차별은 물론 구타와 성희롱까지 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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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인천시 중구 신흥동에 위치한 일제 강점기 시절 정미소 노동자들이 묵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택 모습. 2022.2.2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건축전문가' 장회숙 대표와 동행
중·동구 일대 근대문화유산 탐방
"임금 차별에 구타·성희롱까지"


이날 장회숙 대표와 함께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인천 중구와 동구 일대의 근대산업유산을 둘러봤다. 정미소 사택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1920년 이후 일제 강점기 조선의 하역운송업을 도맡아 했던 조선운송주식회사 '마루보시(丸星)'의 사택도 남아 있다. 당시 일본식 건축물에 쓰였던 대나무 등의 자재들이 눈에 띄었다.

장 대표는 "마루보시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대부분 일용직으로 부두 하역 작업에 투입됐다. 이들도 정미소 노동자들처럼 노동 착취와 임금 차별을 당했다"며 "마루보시 사택이 남아 있는 곳은 현재 인천이 유일한 만큼 당시 상황을 연구할 만한 중요한 건축물"이라고 설명했다.

일제의 계속된 차별과 착취는 1930년대 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으로 이어졌다. 1930년대 초 정미업 노동자 파업으로 시작된 투쟁은 1930년대 중후반 부두 하역 노동자 등이 합세하면서 곳곳으로 번졌다.

운송회사 '마루보시' 사택도 남아
1930년대 하역노동자 합세 '저항'
항일운동 영향 3·1절 의미 되새겨


당시 조선 노동자들의 애환과 투쟁은 강경애의 소설 '인간문제'와 황석영의 소설 '철도원 삼대'에서도 그려졌다.

장 대표는 "당시 인천 지역 노동자 투쟁은 반일·반제 운동으로 이어져 항일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며 "인천에는 일제 강점기 조선 노동자의 애환이 담긴 곳이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일운동에 기여한 인천 지역 노동자들의 흔적을 더욱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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