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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의 암울한 현주소는 법정 용어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광역·기초정부라는 표현을 사용하긴 하나 법정 용어로 헌법을 비롯한 법령에 명시하진 못했다. 이에 아직까지도 자치단체라는 말이 익숙하다. 지난 1월 13일 수원특례시 출범식에서 시민 대표 2인이 수원특례시민헌장을 낭독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연방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방분권'. 행정안전부가 자치분권 로드맵에 명시한 목표다. 올해 전부개정 지방자치법 시행으로 광역·기초의회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인사권 독립이라는 쾌거를 이뤄냈으나 소리만 요란했을 뿐 예산과 조직 편성 권한이 없어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오명이 남았다.


지방자치의 암울한 현주소는 법정 용어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지역의 일은 지역민이 결정한다'는 풀뿌리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국가는 주(州)정부(미국) 혹은 도(都)정부(일본) 등 각급 지방정부로 통칭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광역·기초정부라는 표현을 사용하긴 하나 법정 용어로 헌법을 비롯한 법령에 명시하진 못했다. 이에 아직까지도 자치단체라는 말이 익숙하다.

 

'광역·기초정부' 법령 명시 안돼
기재부 예산통제도 발전 걸림돌
국민 절반 이상 '자치 강화' 동의
"곳곳에 분산해야 할 권력 여전"


더욱이 중앙정부가 지자체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기획재정부가 경제정책과 재무 기능을 동시에 행사하는 권력을 쥐고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등 각 분야 사업 예산을 통제하며 각 지자체에 교부금을 소위 '내려주는' 체계라 지방자치 발전이 요원하다는 게 지역 정가와 학계의 중론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지방자치에서 더 나아가 권력을 분산하는 자치분권의 가치에 대한 국민 인식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시장군수협의회가 지난달 발표한 '2021년도 대국민 지방분권 의식조사'를 보면, 헌법상 지방분권 및 지방자치 관련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설문 응답자(1천명) 중 57.5%가 동의했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12.8%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지방자치·지방분권에 대한 국민 인식이 높아진 만큼 다양한 의제를 곳곳에서 발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자치분권 의제는 지역마다 수요와 특색이 다르므로 현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를 유지해 범부처 차원의 자치분권을 모색해야 한다고도 짚었다.

정순관 전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순천대 행정학과 교수)은 "중앙정부 사무 중 3천여 개를 지방정부로 이양했지만, 여전히 분산해야 할 권력이 곳곳에 있다"며 "지금까진 행정사무 분권이 여러 분야를 포괄했다면, 이젠 각 특정 영역에서의 자치, 분권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현실 정치를 하는 지방 정치인들도 권력 독점을 지양한다는 뜻을 명확히 밝혔다.

전국자치분권민주지도자회의(KDLC)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남종섭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은 "중앙정부가 외교나 국방 등 국가사무를 관할하고 나머지는 모두 지방정부에서 해야 한다는 인식도 있다"며 "과거 군사독재 시절 중앙집중 권력의 폐해를 뼈저리게 느낀 만큼 보다 권력을 잘게 분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미숙 도의회 국민의힘 대표의원도 "지방자치의 제도적인 문제보단 각 지방정부가 주민의 선택을 받아 대신 견제와 감시 기능을 하는 지방의회를 존중하는 게 먼저"라며 "지자체장 한 사람의 독선이 지방분권 시대를 더디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