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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프롬 인천·(4)] 가전제품 뜯어보며 놀던 호기심꾸러기 원현우입니다

올림픽 金·최연소 교수,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손끝… "훈련은 배신하지 않는다"
입력 2023-06-21 21:15 수정 2023-11-02 17:12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6-22 11면
원현우 교수.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전 세계 기술인들은 2년마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무대로 모여 기술력을 겨룬다. 한국은 1967년 스페인 마드리드 국제기능올림픽에 처음 출전해 2019년 러시아 카잔 올림픽까지 30차례 열린 대회에서 19차례 종합 우승을 차지한 압도적 기술 강국이다.

원현우 한국폴리텍대학 포항캠퍼스 융합산업설비과 교수는 2013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제42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철골구조물' 직종 금메달리스트다.

독일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열린 모든 직종 경기를 통틀어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원현우 교수는 최우수 선수상(알버트비달상)까지 거머쥐었다.

송림동서 태어나… 분해·조립 유년 일상
손재주 지켜본 아버지, 모교 실습실로
'선배들 강한 인상' 인천기계공고 입학



日 강점기 설립 인천직업학교 학생 몰려
산업화 시대 전국 4번째 기계공고 전환

국가대표 좌절… 졸업전 HD현대 특채
직종 바꿔 재도전, 금메달·최우수선수
폴리텍대서 후배 양성 "기회는 꼭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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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 손재주 좋은 소년, 인천기계공고로


원현우 교수는 1992년 12월 인천 동구 송림동에서 태어나 중구 연안부두, 연수구 청학동과 옥련동, 옹진군 영흥도로 여러 번 집을 옮겼다.

원현우 교수는 어린 시절 사고뭉치였다. 집 안에 있는 가전제품을 가만히 놔두지 못했다. 이것저것 분해하고 다시 조립해 봐야 직성이 풀렸다. 모두 호기심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손재주가 있음을 이때부터 알아봤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겨울, 원 교수의 아버지는 자신의 모교인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실습실로 아들을 데려갔다.

"아버지를 따라가서 본 인천기계공고 자동화기계과 선배들이 기능경기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우수 기능반'이었다는 것을 그땐 몰랐어요. 집 안 물건을 분해하고 조립만 하다가, 철판으로 형상을 창조해내는 판금 작업을 선배들처럼 직접 해보고 싶어 인천기계공고를 택했습니다."

인천기계공고는 인천 산업사(史)와 궤적을 같이 한다. 인천기계공고는 일제강점기인 1940년 5월 경기도교육청이 설립한 3년제 인천공립직업학교로 출발했다. '인천기계공고 80년사'를 보면 1940년 기계과 2개 학급, 야금과 1개 학급이 개설됐으며 그해 252명이 지원하고 128명이 합격해 입학했다.

지원자 252명 중 인천 출신이 51%로 절반을 조금 넘었고 서울·경기도 20%, 충청도 12%, 영남·호남 6%, 기타 지역 11%였다. 일본인은 9명이었고 만주 출신도 1명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1938년 9월 '조선시가지계획령'을 개정해 서울 용산, 영등포 일대와 인천을 토지 수용이 가능한 공업지역으로 지정했다.

조선총독부는 이듬해 11월 인천 학익정(현 미추홀구 학익동), 송현정(현 동구 송현동), 송림정(현 동구 송림동) 일대 529만6천500㎡를 '공업용지 조성지구'로 지정해 조선기계제작소(현 동구 HD현대인프라코어 자리) 등 대규모 공장들을 세웠다. 인천 최초의 도시계획상 공업지대다.

이 같은 배경에서 인천공립직업학교가 설립됐다. 해방 후 1946년 6년제 인천공립공업중학교로 개편했고, 1951년 3년제 인천공업고등학교로 전환했다가 1976년 정부가 특수목적고교로 지정해 인천기계공고로 교명을 바꿨다. 당시 '기계공고'로 전환한 공업고등학교는 부산기계공고, 성동기계공고, 충남기계공고에 이어 인천기계공고가 4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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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현우 교수는 2013년 7월 독일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최우수선수상인 '알버트비달상'을 수상했다. 원 교수는 알버트비달상 발표 직후 금메달을 목에 건 채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회장을 가로질러 뛰었다. /원현우 교수 제공

■ 국가대표 향해 '훈련 또 훈련'


원현우 교수는 고교 1학년부터 판금 직종 우수 기능반에서 활동했다. 판금은 1.2㎜의 얇은 철판으로 환기구 같은 형상을 주어진 도면대로 만드는 직종이다. 철판을 치수에 맞게 판금 가위로 잘라 원통 모양으로 말거나 구부려 부품을 만들고, 각 부품을 용접하거나 볼트로 이어붙여 작품으로 완성한다. 1㎜ 오차로도 형상이 틀어진다. 정밀함이 중요한 복합 기술이다.

당시 특성화 고등학교들은 기능경기대회 출전을 목표로 직종별 선수를 육성하는 우수 기능반을 운영했다. 원현우 교수는 기능반 입구에 붙은 역대 인천시·전국기능경기대회와 국제기능올림픽 수상자 명단을 보고 "처음으로 꿈이란 걸 갖게 됐다"고 했다.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이란 최종 목표를 정하고 나서 중간중간의 목표를 세웠어요. 국제기능올림픽에 출전하려면 국가대표가 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1위를 해야 하죠. 평가전은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1·2위를 해야 나갈 수 있고, 전국 대회 출전 자격은 지역 기능경기대회에서 입상해야 합니다. 하나하나 목표를 이뤄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원 교수의 고교 시절은 '훈련 또 훈련'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매일 수업을 마치자마자 기능반에 가서 철판을 자르고 꺾고 붙였다. 학교 선생님이 시킨 것도 아닌데 대회가 가까워지면 주말도 명절도 없이 훈련에 매진했다.

2학년 때 출전한 인천시 기능경기대회에서 판금 직종 2위를 차지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듬해 4월 인천시 기능경기대회에서 우승해 전국기능경기대회 출전권을 따냈다. 2010년 9월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 평가전에 나섰지만,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탈락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인천기공 카퍼레이드
1981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제26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인천기계공고 출신 기계제도, 선반 직종 선수들이 서울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며 시민들에게 축하받고 있다. /인천기계공고 제공

■ 마침내 이룬 올림픽 금메달의 꿈


원현우 교수는 전국기능경기대회 우승자 자격으로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인 2010년 11월 HD현대중공업에 특별 채용됐다. 국제기능올림픽의 꿈이 좌절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울산에 있는 HD현대중공업 조선소 현장으로 투입됐다.

원현우 교수는 대형 선박의 엔진룸에서 엔진과 주요 기계장치를 연결하는 파이프를 설치하고 검사하는 일을 맡았다. 기능경기대회 훈련과 산업 현장은 많이 달랐다.

"학교 기능반에서 훈련할 때는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하니까 반듯하고 편한 자세에서 용접했는데, 현장에선 천장에 매달리거나 좁은 연료탱크 안에서 거울을 보면서 용접해야 했습니다. 좋지 않은 자세로 고품질을 내야 하는 현장은 기량과 노하우가 모두 중요했습니다."

2012년 국제기능올림픽 출전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회사 기술교육원에서 철골구조물 국가대표 평가전에 출전을 권유했다. HD현대중공업은 국제기능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 기술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바이어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인들을 확보하고 있다'라는 강점을 부각한다는 차원이다.

철골구조물은 판금보다 훨씬 두꺼운 6㎜, 9㎜ 두께의 철판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직종이다. 가스 용접기로 철판을 녹여 절단하고 모양에 맞게 구부려 도면으로 제시된 건축물이나 중장비 모형을 만드는 작업이다. 철판은 용접할 때 열을 받아 늘어났다가 식으면 줄어드는 특성이 있는데, 이러한 오차까지 계산해야 해 무척 까다롭다.



 

"논문 한 편 쓸 정도로 쌓은 (훈련) 데이터"와 1년 동안의 현장 경험은 원현우 교수에게 큰 도움이 됐다. 넉넉한 점수로 평가전에서 우승해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 태극 마크를 달았다.

원현우 교수는 2013년 7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 철골구조물 경기에 나섰다. 이 직종에 일본,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14개국 선수가 출전했다. 올림픽 경기에선 중장비와 타워브릿지 모형 등이 과제로 제시됐다. 원현우 교수가 머릿속에 축적했던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모든 과제가 다 나왔다.

자신 있게 철판을 잘라 말거나 구부리고, 거침없이 붙여 형상을 만들어 나갔다. 월등하게 뛰어난 작품을 만들었다고 자부했다.

경기 결과를 발표한 시상식 당일 대회 전광판에 철골구조물 금메달 수상자로 '코리아(KOREA) 원현우'라는 글자가 마침내 떴다. 경기 점수는 100점 만점에 98.94점으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모든 경기의 시상식이 끝나자 장내가 조용해진 가운데 대회 총책임자는 최우수선수에게 주는 '알버트비달상' 수상자를 발표했다. 또다시 '코리아 원현우'가 호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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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현우 교수가 반도체 웨이퍼를 보호·이송하는 특수 용기인 '쿼츠웨어'(석영유리)에 용접하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2023.6.21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 고향 인천은 후배들이 있는 곳


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원현우 교수는 회사 기술교육원에 배치돼 용접과 배관·의장 설치 교육을 맡는다. 기술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다. 원 교수는 2014년부터 회사 야간대학 조선해양과에서 전문학사 학위를, 이후 학점은행으로 기계공학 학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부산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2022년 1월 한국폴리텍대 포항캠퍼스 융합산업설비과 교수로 임용됐다. 만 29세로 한국폴리텍대학 사상 최연소 교수 타이틀이 생겼다. 배관, 플랜트 설비, 접합기술 등을 실습 중심으로 가르치고 있다. 제자는 90명으로, 30명씩 3개 반을 맡고 있다.

원현우 교수에게 고향 인천은 기술인이 될 후배들이 있는 곳이다. 실제로 원 교수의 모교엔 그를 본보기로 삼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그도 여전히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넘친다.

원현우 큐알코드
기사 전문 온라인
원현우 교수는 "큰 목표를 세우고 중간중간 세분화해서 목표를 설계해 놓으며 살아온 것이 나를 발전시키고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준비하면서 또 다른 길이 생기기도 했다"며 "기술인으로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한다면 기회는 찾아온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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