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상

[자치단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입력 2023-07-31 20:01
지면 아이콘 지면 2023-08-01 19면

이충우-여주시장.jpg
이충우 여주시장
인터넷 검색창에 '여주 미술관'을 치면 제법 많은 미술관이 뜬다. 오일장이 서는 시장 골목의 빈집을 개조해 만든 작은 미술관까지 더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여주가 예술의 고장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관은 우리 삶의 현장 가까이에 있지만 사실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전시작품을 감상하고 누리는 이는 드물다.

미술관에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지나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면 이해는 간다. 그곳에서는 일상에서 통용되는 것과 다른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알 듯 모를 듯한 전제가 공감을 가로막고, 작가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는지를 선뜻 말하지 못하게 한다. 혹시 내가 작가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게 아닐까? 이런 의문이 낯선 예술 작품에서 새로운 뭔가를 느끼며 삶의 여유를 찾고 싶은 사람들을 문 앞에서 서성이게 한다.

市운영 '아트뮤지엄 려' 구상회화 기획전
관람객들 불편하게 만드는 경계 화두로


여주프리미엄아울렛에 있는 '아트뮤지엄 려'는 여주시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이다. 지난 7월20일부터 이곳에서 하반기 기획전이 열리고 있는데 그 주제가 흥미롭게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관람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화두로 미술가들이 관람객들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장르는 회화와 사진이고 영역은 구상이다. 점·선·면으로 단순화한 추상 회화와 달리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구상 회화다. 그런데 그림을 관람하다 보면 사실적 묘사로 보이는 작품들 속에 작가의 기억과 경험 또는 상상이 한데 섞여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경계가 모호해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나눌 수가 없는 것이라고, 이것이 회화가 가진 본래의 역할이자 기능이라고 21명의 참여 작가가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듯하다.

이영희 작가의 '모악산 가는 길'에는 삶이 빚어낸 온갖 기억과 연민이, 황재형이 그린 바이칼호의 풍경은 적막의 황금빛으로 일렁이는가 하면, 황제성 화가의 'Nomad-idea'에는 유년에 접한 다양한 동화 속 주인공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고, 설경철 화가의 'From the book 109'에는 책으로부터 연상된 극사실적인 사물들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초현실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더하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박상훈 사진작가의 배우 안성기의 포트레이트에는 배우라는 화려한 직업이 주는 아우라는 간데없고 대신 신산한 세월을 보낸 한 중년의 남성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아트뮤지엄 려'에 전시된 그림을 둘러보며 나는 여주를 떠올린다. 여주로 귀촌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주의 남한강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지만 정작 여주가 고향인 나는 그분들이 말하는 강은 잘 모른다. 돌이켜보니 나를 지배하는 것은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가 부둥켜안고 살아온 남한강은 멀지만 친근하고, 풍요롭지만 엄격하고, 활달하면서 고단하고, 지루하지만 아늑하다.

사실적 묘사와 작가의 경험·상상 섞여있어
모호한게 아닌 애초에 나눌수 없음 나타낸듯

남한강은 한반도 남쪽에서는 가장 많은 수량을 가진 데다 강폭이 좁고 강수량도 여름철에 집중되다 보니 수해가 잦았다. 신륵사의 전탑이 남한강을 굽어보는 절벽 위에 들어선 것은 멋진 풍광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전탑은 거센 물살로 강을 오가는 배에 위험을 알리는 징표이자 '보이지 않는' 이 가파른 땅의 기운을 제압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 마을 가까이에 있는 고달사지는 고려 때 사방 30리를 경내로 삼아 수백 명의 승려가 살았던 고달사의 폐사지다. 지금은 대가람의 위엄을 찾을 길 없지만, 고달사지의 광활한 빈터를 서성일 때 드는 마음만은 공허하다거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온화하고 포근하다.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이 주는 생기를 느끼는 것일까.

이 전시는 9월3일까지 진행된다. 여주시 미술관 '아트뮤지엄 려'는 여주 프리미엄아울렛 WEST H주차장 안쪽에 있다. 여주가 방문객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이충우 여주시장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