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녹화하려고 바디캠 달고 다녀요”
지난해 11월 수원에서 배달라이더로 일하는 최모(27)씨는 배달 콜을 잡고 음식 준비 예정 시간을 맞춰 매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포장돼 배달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음식은 보이지 않았다. 최씨는 점주에게 “음식이 언제 나오냐”는 짧은 질문을 했지만 돌아온 건 반말과 욕설이 섞인 폭언이었다.
그는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본인이 피해자라는 것을 입증할 자료가 없었다. 그 후 최씨는 바디캠을 부착하고 배달을 한다. 최씨는 “어이없이 폭언을 들었는데 그걸 입증할 수 없더라”며 “또 갑질을 당했을 때 증거를 모으려고 바디캠을 사서 옷에 달고 일한다”고 말했다.
바디캠은 배달된 음식을 가져갔지만 배달받지 못했다고 속여 환불을 요구하는 갑질인 ‘배달거지’ 피해에서 배달라이더를 구제하기도 했다. 시흥에서 5년째 라이더로 일하는 조모(41)씨는 지난해 10월 주문이 들어온 배달지에 정확히 음식을 전달했지만 30분 뒤 고객센터에서 ‘고객이 음식을 못 받았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조씨는 “경찰은 주문자가 음식을 가져간 것을 확인하지 못하면 처벌할 수 없다고 하고, 배달플랫폼은 약관에 따라 라이더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고 했다”며 “다행히 바디캠과 오토바이 블랙박스 영상으로 배달에 문제가 없는 것이 확인돼 책임을 지지 않았다”고 안도했다.
라이더들은 공통적으로 갑질에서 보호받기 위해선 바디캠 소지가 필수라고 말했다. 배달라이더 10년 경력의 주모(48)씨는 “바디캠은 라이더가 겪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보험 같은 역할을 한다”며 “바디캠이 없는 라이더가 많은데, 억울한 일을 안 당하려면 바디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와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이 배달라이더 1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상당수의 배달라이더가 점주와 고객의 폭언 등 갑질에 노출돼 있었다.
응답자 중 45.2%는 ‘고객에게 폭언·폭행을 겪었다’고 답했다. ‘점주에게 폭언·폭행을 겪었다’고 답한 배달라이더는 51.9%로 절반을 넘겼다. 고객의 갑질은 ‘고의적 거질말’(32.7%), ‘반말’(28.8%), ‘직업 비하’(17.3%) 순으로 나타났다. 점주 갑질은 주로 조리 대기 상황에서 일어났는데, ‘반말’(31.7%)과 ‘욕설’(17.3%), ‘‘부당업무 강요’(16.3%)가 뒤를 이었다.
이 같은 배달라이더의 노동환경에 손윤경 라이더유니온 경기지회 사무국장은 “바디캠이 점주와 고객의 갑질과 폭언 등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 피해사실도 증명할 수 있다”며 “배달라이더는 폭언에 시달렸을 때 혼자 감당해야 한다. 갑질로부터 배달라이더를 보호하는 제도와 배달플랫폼과 배달대행사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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