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새벽 배송기사 정슬기씨 남양주서 숨져
“개처럼 뛰어” 올해 초부터 업무 가중 호소
대책위 “주당 노동시간 초과” “과로사”
“내색하지 않던 아들이 ‘무릎이 닳아서 없어질 것 같다’ 말했다고…”
27일 정금석(69)씨는 쿠팡 새벽 로켓배송을 하다 지난달 28일 오후 남양주의 집에서 쓰러져 숨진 아들 정슬기(41)씨를 떠올리며 말끝을 흐렸다.
슬기씨가 쿠팡(퀵플렉스) 배송기사로 일한 건 지난해 3월부터다. 10여년 전 결혼해 4명의 자녀를 키우면서 자신이 전공한 음악 작곡일을 ‘밥벌이’로 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긴 시간 과중한 배송 업무를 맡으면서 힘든 내색 보이지 않으려던 슬기씨는 올해 들어 집에 조금씩 어려움을 털어놨다. 정금석씨는 “평소 표현하지 않던 아들이 일하고 돌아와서 아내에게 ‘무릎이 닳아 없어질 것 같다’고 말하거나 힘들다는 얘기를 종종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슬기씨는 이 무렵 회사 직원이 카톡으로 ‘어마어마하게 (배송물량) 남았네요’, ‘달려주십쇼ㅠ’라고 남긴 말에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대책위)와 정슬기씨 유족은 이날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남양주2캠프 한 대리점에서 일했던 고인이 과로로 죽었다”며 “병원에서 대표적인 과로사 원인인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인을 밝혔으며, 이는 쿠팡의 로켓배송 시스템이 만든 죽음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대책위에 따르면, 슬기씨는 쿠팡CLS와 계약 맺은 대리점 소속 쿠팡 배송기사로, 평소 오후 8시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하루 약 10시간 30분씩 주 6일 근무했다. 그의 평균 노동시간은 63시간(야간근무 30% 할증 시 77시간)이었다.
대책위측은 이날 슬기씨가 쿠팡CLS 직원으로부터 카톡으로 업무지시를 받은 정황을 공개하며, 그간 숨지거나 다친 기사들과 관련해 ‘자사 소속 직원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설명해온 쿠팡CLS측의 해명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금석씨는 이날 회견에 참여한 후 경인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들이 숨진 후로 만난 아들 동료들이 엉터리 계약서를 쓰며 불합리함에 대해 얘기를 못한 다는 것에 안타까움이 컸다”며 “더이상 아들과 같은 죽음이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고, 쿠팡이 사과와 함께 배송일을 하다 죽은 기사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쿠팡 측은 “택배 기사의 업무시간과 업무량은 전문 배송업체(대리점)와 기사 간 협의에 따라 결정된다”며 “쿠팡CLS는 택배 기사의 업무가 과도하지 않도록 국토교통부 표준계약서에 명시된 주당 작업 일수와 작업 시간에 따라 관리해 줄 것을 업체에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