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법정구속은 면했다. 법원은 쌍방울이 경기도를 대신해 대북사업 자금을 대납한 사실을 재차 인정하면서 “(김 전 회장이)이화영의 요청 또는 회유에 의하여 범행을 결심하고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신진우)는 12일 김 전 회장에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뇌물공여 등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실형이 선고됐지만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법정 구속은 면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5월 결심 공판에서 김 전 회장에게 징역 3년6개월을 구형한 바 있다.
재판부는 대북송금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 김 전 회장의 일부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대북송금 의혹은 김 전 회장이 지난 2019년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도지사 재직 시절,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공모해 경기도 대북사업 자금과 이 전 대표 방북비 명목으로 총 800만 달러를 북한 측에 대신 건네줬다는 내용이다. 관련 혐의로 이 전 부지사는 지난달 1심에서 징역 9년6개월의 중형을 선고받았고, 뒤이어 이 전 대표도 제3자 뇌물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법원은 총 800만 달러 중 394만 달러가 불법적으로 국외로 반출되고 200만 달러는 금융제재대상자인 북한 조선노동당에 지급한(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았다. 나머지 액수에 대해서는 불법적인 수법이 동원된 점이 확인되지 않았고, 실제 북한 조선노동당에 전달된 것이 획인되지 않거나 의도가 없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이 인정돼 무죄로 판단됐다.
김 전 회장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등과 공모해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불법 협력사업을 진행했다는 의혹(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위반)에 대해서는 800만 달러 중 대북사업 자금 500만 달러만 혐의가 인정됐다. 이 전 대표 방북비 명목 300만 달러는 실제 시행단계로 접어든 것이 아닌 ‘준비행위’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해 무죄로 판단했다.
대북송금 혐의에 재판부가 인정한 내용은 공범 관계인 이 전 부지사 1심 선고 당시와 동일했다. 재판부는 대북송금 의혹과 관련해 “유력 정치인과의 사적 친분 내지 관계 유지를 위하여 통일부 장관의 승인 없이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시행함으로써 정부의 관리감독하에 투명하게 추진되어야 할 남북간 교류협력사업의 질서를 무너뜨렸고, 음성적인 방법으로 북한에 거액의 자금을 무모하게 지급함으로써 외교안보상 문제를 일으켜 그 비난가능성이 높다”고 판시했다.
김 전 회장은 이 전 부지사에 불법 정치자금 및 뇌물을 전달한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이 지난 2018~2022년 이 전 부지사에게 쌍방울 법인카드와 법인차량을 제공하고, 이 전 부지사 측근에 허위 급여를 지급해주는 등의 방법으로 총 2억1천800여만원의 정치자금을 불법적으로 지급하고 그중 1억700여만원의 뇌물을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이 자금 전달 과정에 쌍방울에 2억2천4백만원 상당의 손해를 입혀 배임하고, 자금 1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도 인정됐다.
앞서 검찰이 혐의를 의심한 불법 정치자금 액수는 3억3천400만원, 뇌물은 2억5천900만원 상당이었다. 실제 범행액수는 이보다 적게 선고됐는데, 이는 이 전 부지사가 부지사직에 취임하기 전 사용한 자금은 직무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았고, 부지사직 이후인 킨텍스 대표이사 시절 제공받은 자금도 정치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제공된 것이라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혐의를 벗어났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 대해 “피고인은 대부분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수사 초기 상당기간 해외로 도피하였으며 집행유예기간 중에 있음에도 자숙하지 않고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 업무상횡령⋅배임의 피해 회복도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피고인에 대한 실형 선고는 불가피하다”면서도 “피고인이 이화영의 요청 또는 회유에 의하여 이 사건 범행을 결심하고 실행한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이 실질적으로 이익을 얻었다고 볼만한 사정은 드러나지 않은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판시했다
선고 직후 수원지검은 “재판부는 쌍방울그룹이 북한에 500만불과 300만불을 송금한 목적이 경기도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인 황해도 스마트팜 지원과 경기도지사의 방북 추진이었다는 점을 지난달 이 전 부지사 선고에 이어 다시 한번 명확히 판단하였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김 전 회장은 이날 선고 직후 취재진에 “착잡하다”며 “항소 여부는 변호인과 검토해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이밖에도 쌍방울 임직원 명의로 5개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538억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도 별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재판부는 김 전 회장의 혐의 중 이 전 부지사와 연관된 대북송금 및 뇌물공여 혐의 사건을 분리하고 지난 5월 재판을 종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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