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 동물원 존폐를 묻다
유럽, 정부-민간 2중 감시로 '자정'… 한국, 휴폐업하거나 도망가도 '방치' [시대착오 동물원, 존폐를 묻다·(4-2)]
유럽은 '촘촘' 한국은 '널널'
獨 헬라브룬, 1개월마다 파견 감독
네덜란드, 반입 절차 감시에 힘써
EAZA, 감사 등급따라 조치·혜택
환경부 '정보시스템' 구축 감감
독일 라이프치히 동물원에 검사관들이 카피바라와 사슴 야외 방사장을 점검하고 있다.2024.6.13./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국내 동물원이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과 달리 독일과 네덜란드 동물원들은 행정당국을 넘어 민간 차원의 촘촘하고 지속적인 감시 그물망 체계 안에서 운영되고 있다.
독일 뮌헨 헬라브룬 동물원은 1개월마다 분야별 관할 행정 기관의 파견 감독을 받는다. 동물 서식 환경, 종 보호 현황, 동물원 재정 상황 등을 파악하기 위한 검사관과 공무원이 동물원에 방문하는 형태다. 이처럼 일상화된 감독 체계로 신종 감염병 발생 등 동물에 대한 즉각적인 위험 요인의 경우 방대한 동물원 연구 자료에 기초해 확산을 빠르게 차단하거나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라이프치히 동물원도 이같은 체계를 바탕으로 운영된다. 실제 지난 6월 13일 이 동물원을 찾았을 때, 카피바라와 사슴 야외 방사장 등을 육안으로 보고 문제사항을 기록하는 검사관 4명을 볼 수 있었다.
네덜란드의 뷔르거 동물원에서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해양 생물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곳 동물원에 있는 각 동물의 서식환경 등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 2024.6.17./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
네덜란드 아른험의 뷔르거 동물원은 정부 기관의 감시와 더불어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민간 동물 협회의 감독을 받는 등 크게 두 가지 관리 체계 아래 있다.
정부 기관의 대표적인 감시 역할은 동물 반입 절차다. 원숭이종을 예로 들면, 성별에 따른 습성부터 방사장 내부 나뭇가지의 지름까지 서식 환경의 모든 부분이 검사 대상이라고 한다. 아룬 아이두 뷔르거 동물원 동·식물 관리 총괄 책임자(생물학자)는 “동물 관리에 오랜 경험을 가진 전문가와 공무원이 협업하는 과정을 거치며, 원숭이나 코끼리 한마리를 들여오는데도 4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며 “동물원에서도 짧은 시간이 아니지만 동물의 환경을 고려하면 이러한 정책 방향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독일 헬라브룬 동물원에 원숭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헬라브룬 동물원은 인공물을 없애고 서식지와 최대한 유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2024.6.11./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 |
민간 차원에서는 유럽 동물원 수족관 협회(EAZA·European Association of Zoos and Aquaria)의 감시를 받는다. EAZA는 회원사인 각 동물원에 대한 관리가 까다롭기 유명하다. 협회 차원의 동물원 현장 정기 감사는 3일씩 진행되며 감사 결과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동물 보호, 서식지 환경 등 기준에 따라 낮은 등급을 받을 경우, 다른 동물원의 교류를 통해 넘어온 동물을 다시 되돌려놓는 강력한 조치가 협의 하에 진행된다. 반대로 높은 등급을 유지하면 연구를 위한 동물 교류, 지원 등을 활성화하는 등 보다 높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당근과 채찍을 통해 동물원의 자정을 꾀하는 셈이다.
지난 6월 13일 찾은 독일 북부 라이프치히 동물원. 방문객들이 수풀 형태로 우거진 야외 방사장에서 쉬고 있는 동물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2024.6.13 /조수현기자 joeloach@kyeongin.com
하지만 국내 동물원의 경우 이는 먼 이야기일 따름이다. 환경부는 지난 2020년 동물원 관리 종합계획을 만들어 동물들의 생체정보와 다양한 지표 등을 전산화하는 ‘동물원정보관리시스템’ 구축을 공언했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다. 정부가 국내 동물원의 현황자료를 모으기 시작한 것도 불과 2년 전인 2022년부터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시스템 구축에 많은 시간이 소요돼 1차 종합계획(2021-2025년)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2차 계획 때 재포함시켜 추진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21일 오전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타조가 전시되어 있다. 이곳 타조 방사장은 관람객과 거리가 가까워 타조들이 인간의 시선을 신경쓰는 모습을 보인다. 2024.7.21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동물원 관리 체계가 없다 보니 동물원 휴·폐업과 동물 탈출 등 이슈가 불거질 때 동물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거나 정체 파악에 혼선을 겪는 일이 반복된다. 지난 5월 대구 수성구 한 동물원이 폐업했지만 몇몇 동물은 옮겨지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방치된 채 남아 있다. 또 지난 1월 오산의 한 야산에서 멸종위기종인 붉은여우가 발견됐을 당시 행정당국은 여우의 원적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여러 조사와 수소문을 거치는 과정에서 인근 동물원에서 탈출한 개체인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5월 27일 찾은 경남 김해시 부경동물원은 재정상의 이유로 폐업한 상태였다. (주)아이니그룹이 운영하던 동물들은 대부분 대구 수성구에 있는 실내 동물원 ‘아이니 테마파크’로 이송됐지만 일부 동물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다. 2024.5.27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최인수(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는 “‘동물원수족관법’ 개정 이전에도 동물을 학대하면 안된다는 조항 있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면서 “여전히 지자체가 신고를 받고 나가도 행정조치 같은 처분결과가 제각각이고, 휴·폐업 상황 때는 동물이 굶어 죽는 등 문제가 더 심각해 정부 차원의 일관된 정책 방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조수현·김지원·목은수 기자(이상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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