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동물원을 없애자

입력 2024-08-11 19:43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8-12 19면
시대 변해도 '단순 전시'라는 목적 안바뀌어
기후도 안맞는 실내에 일년내내 갇힌 존재
정부, 정책 재수립 단계적 폐지·기능전환을
숨 헐떡이며 슬픈 눈 마주치는 동물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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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규 사회부장
동물원을 없애자는 얘기를 하려 한다. 엉뚱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는 걸 안다. 관심 끌려고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냉소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경인일보는 최근 '시대착오 동물원, 존폐를 묻다'라는 제목의 연속 기획보도를 통해 현시대 동물원 운영형태 및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여러 대안의 실현 가능성을 타진한 적이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동물원 폐지 필요성을 본격적으로 얘기하려 한다. 정확히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도 버젓이 운영 중인 구시대적 동물원을 없애자는 얘기다. 하루아침에 말살하는 게 아니라 단계적으로 없애 나가자는 얘기다. 100년 넘도록 변한적 없는 동물원의 태생적 목적을 되짚어본다면, 이 얘기가 아주 공상적으로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동물원이 처음 생긴 건 한일병합 직전인 1909년 일제에 의해서다. 창경궁 자리에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서고 창경원이 문을 열었다. 당시의 동물원은 단순 오락 목적의 전시시설이었다. 교육의 목적도 물론 따라붙었다. 그때만 해도 그럴싸한 명분이었다. 바다 건너에 사는 동물을 일부러 잡아와 가두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간접적으로도 희귀동물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영화나 사진 등의 매체가 일반에 보급되지 않았던 때, 해외교류라는 게 없다시피 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창경원은 대단한 오락거리이자 신기한 체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도 이 같은 동물원의 태생적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종 보전의 목적이 근래 도입되고 있다고 해도 이는 극히 일부일 뿐, '단순 전시'라는 동물원의 주목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텔레비전이 가정마다 보급되고, 정보의 바다가 펼쳐지고,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시대가 올 때도 달라지지 않았다. 가상현실로 동물과 실제처럼 교감하고, TV에서 극장에서 유튜브에서 동물의 생태를 습득하고, 동물의 움직임부터 피부 질감까지 완벽히 재현하는 모형이 나오고 있어도 관람객을 우선시하는 동물원의 목적은 120년 전 초창기 그대로다.

교육의 목적은 어떤가. 종을 가리지 않고 백화점식으로 전시하는 운영형태가 교육적·정서적으로 아이들에게 이로울지 의문이 든다. 신체능력이 열등하거나 외모가 특이할 경우 구경거리로 삼을 수 있다는 인식, 힘이 약한 생물체는 가둬 놓을 수 있다는 인식을 무의식중에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역사에는 서구 열강이 백인과 다른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나 식민지 사람들을 전시하고, 일본이 조선인·대만인·아이누인 등을 박람회에 전시했던 비극이 기록돼 있다.

몇 해 전 말레이곰과 얼룩말 등이 동물원을 탈출해 도심을 뛰어다닐 때도 세상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다시 잡아들일지에 쏠려 있었다. 이 동물들이 왜 기후도 맞지 않는 한국의 동물원에 갇혀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은 딱히 없었다. 억압에 무방비한 동물들의 약점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시설이 그렇게 우리 주변에 무감각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사회 전체가 무감각한 사이 곰과 호랑이 같은 맹수까지 일 년 내내 실내에 전시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동물원의 단계적인 폐지와 과감한 기능전환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정부가 동물원정책 어젠다를 다시 세워줘야 한다. 허가 요건을 까다롭게 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30년, 50년 뒤를 내다보고 동물권에 대한 인식변화와 기후위기, 기술의 발전 등을 사전에 예측해 새로운 개념의 동물원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동물 종 하나를 수입할 때도, 각계 전문가들의 엄격한 심의를 거쳐 승인하는 식으로 한국정부가 선도적인 방향성을 보여준다면 각각의 동물원은 이를 자연스럽게 쫓아갈 수밖에 없다.

숨을 헐떡이고 야위어가며 관람객과 슬픈 눈을 마주치는 동물들이 없어지는 날, '동물원을 없애자'는 경인일보의 제안이 시대를 앞선 사회변혁의 마중물이었다고 평가받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황성규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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