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일 제20회 인천여성영화제 개막
시 지원 없이 후원금·예산으로 진행
지난해 퀴어상영 막으려다 시정권고
11월 열리는 다른 영화제에 지원키로
“중요한 건 영화제 가치 지켜지는 것”
“앞으로도 매년 혐오와 차별에 맞서 인천시민들을 찾아가겠습니다.”
지난 6일 오후 7시께 제20회 인천여성영화제 개막식이 열린 영화공간주안 4관이 장미꽃 향기로 가득했다. 관객 100여명의 손에는 여성 인권 증진을 의미하는 장미꽃이 들려 있었다. 인천여성영화제 조직위원회는 1908년 미국에서 벌어진 여성들의 노동, 정치적 권리 확대를 요구하는 시위에서 참정권을 의미한 장미꽃을 한 송이씩 관객들에게 나눠줬다.
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열리는 이번 인천여성영화제는 인천여성회와 모씨네사회적협동조합이 공동으로 주관했으며, 인천의 시민사회단체 약 59개가 힘을 모았다. 인천여성영화제는 2005년부터 여성, 성소수자,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을 다루는 영화를 상영하며, 인천의 대표적인 영화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날 개막식에 참여한 이진호(34)씨는 “성평등한 사회를 추구하고 차별에 맞서는 인천여성영화제의 목표가 가치 있다고 생각해 개막식을 보러 왔다”며 “인천에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런 자리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열린 인천여성영화제는 인천시의 지원 없이 시민들이 낸 후원금과 주최 단체의 예산 2천여만원으로 치러진다. 지난해 제19회 인천여성영화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천시는 주최 단체에 퀴어 영화를 상영하지 말라고 했다가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시정 권고를 받았다. (7월25일 8면보도=인천시 퀴어영화 금지령, 인권위 “차별” 일침)
인천시는 최근 공모를 통해 영화제를 주최한 경험이 없는 한 단체에 행사를 맡기고 예산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여성폭력추방주간(11월 25일~12월1일)’이 있는 오는 11월에 인천시의 지원을 받는 또 다른 인천여성영화제가 열리게 된 것이다.
2005년부터 매년 인천여성영화제에 참석했다는 서혜진(45)씨는 “인천여성영화제는 여성 등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통하고 연대를 다짐하는 하나의 축제였다”며 “20년 동안 인천시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온 인천여성영화제를 대하는 인천시의 모습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남쪽 항구에는 여전히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로 막을 올린 이번 인천여성영화제에는 총 21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6일 오후 3시에는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주최한 ‘노년인권토크’가 열리기도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정진웅 전 덕성여대 문화인류학 교수, 영화 ‘69세’를 만든 임선애 감독 등은 ‘노년의 성과 사랑’을 주제로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손보경 제20회 인천여성영화제 공동주최위원장은 “중요한 것은 인천시가 인천여성영화제를 주최하기 위한 예산을 어느 단체에 지원하느냐가 아니라 인천여성영화제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며 “오는 11월에 열리는 또 다른 인천여성영화제가 차별 철폐, 인권 증진 등의 의미를 훼손하진 않는지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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