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
누구나 누릴 권리… 기다리고 기다려도 직접 읽고 싶어요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下)]
지역 유일의 시각장애인 특수학교 '인천혜광학교'
유치원~고교 교육과정 통합 진행
'전국 초중읽기대회' 대상 영예도
교사들 "점자 중요성 적극 알려야
교단 서보니 저시력장애인도 필수"
지난달 30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시각장애인 특수학교 인천혜광학교에서 홍예준 학생이 점자책을 읽고 있다. 2024.10.30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인천 유일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인천혜광학교 교실에는 독특한 점이 있다. 교탁 없이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책상 앞에 마주 보고 앉아 수업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선생님들은 학생이 점자로 된 교과서를 제대로 읽고 있는지 살피며 수업한다. 점자를 읽는 손가락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글을 잘못 이해할 수 있어 학생의 자세와 손 모양을 수시로 확인한다고 한다.
인천혜광학교는 잔존 시력이 남아 있는 저시력 장애인에게도 모두 점자를 가르친다. 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알지 못하면 세상과 소통할 길이 막히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과정을 통합해 가르치는 인천혜광학교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점자 교육을 시작한다. 학생들은 대부분 한 학기 안에 점자를 익힌다고 한다. 인천혜광학교를 포함해 전국 13곳의 시각장애인 특수학교가 학령기 아이들에게 점자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달 29일 전국의 시각장애 초·중등학생이 참가한 점자 읽기 대회에서 인천혜광학교 학생이 중등부 대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홍예준(15)군은 "대상을 타서 기쁘지만 시간이 부족해 읽기 문제를 하나 풀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 "점자를 계속 사용해야 점자를 읽고 쓰는 능력이 닳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학교에 다니는 한서윤(11)양은 며칠 전 엄마와 서점을 갔다가 읽고 싶은 책이 생겼다고 했다. '수상한 영화관'이라는 제목이 흥미로워서 꼭 읽고 싶었지만 점자로 된 책이 없어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한양은 "엄마가 점자책을 받으려면 오래 걸릴 테니 소리 내서 읽어주겠다고 했는데 내가 직접 읽고 싶어서 기다리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엄마도 나를 따라 점자를 배우겠다며 몇 달 동안 노력했는데 결국 포기했다"고 미소 지었다.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윤효원(44) 교사는 "시각장애 아이가 있는 부모들은 자녀와 소통하고 싶어서 점자를 배우려 하는데 대부분은 포기한다"며 "중도 시각장애인도 배우기 어려운 점자를 비시각장애인이 배우긴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점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적극 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예 앞을 보지 못하는 전맹 장애인에게만 점자가 필요하다는 인식 탓에 점자를 배우지 않으려는 저시력 장애인이 많다고 한다.
저시력 장애인인 봉기용(43) 교사는 "희미하게 앞이 보이는 저시력 장애인들은 눈앞에 책을 가까이 가져가면 글자가 보여 점자를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나도 점자를 몰랐다면 교단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 점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몸소 느껴 학교를 찾아오는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도 꼭 배우라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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