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
전체 신간 대비 미미… 원문 제공 명문화 필요 [손끝에 닿지 않는 '훈맹정음'·(下)]
국내 가장 오랜 점자책 기업 '도서출판점자'
故 육병일 선생이 세운 한국점자도서관 자회사
기관의뢰 출판물 아닌 경우 일일이 스캔 어려움
특수잉크 'UV 점자' 기술 보유… 관련 특허도
지난달 31일 찾은 서울 성동구 (주)도서출판점자에서 'UV 점자' 프린터로 달력을 제작하고 있다. 2024.10.31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 |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점자 책 제작 업체는 지난 2009년 설립된 (주)도서출판점자다.
이 출판사는 국내 최초 점자도서관인 '한국점자도서관'의 자회사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한국점자도서관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 중인 사립도서관이다.
시각장애인 고(故) 육병일 선생이 1969년 사재로 세운 이 도서관은 2000년대 초반까지 점자 책 제작을 해왔고, 이후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시작한 도서출판점자가 점자 책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육 관장의 딸인 육해근씨가 초기에 대표를 맡았고, 광주세광학교의 교사였던 김동복 대표가 2015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김 대표도 저시력자다.
도서출판점자는 시각장애인 학생에게 제공되는 교과서, 학습서를 비롯해 각종 도서를 점역해 제작한다. 또 공공기관의 출판물, 달력, 명함 등도 만들고 있다. 이와 함께 시각장애인 작가나 시각장애 관련 도서를 쓴 작가들의 신간을 출판하기도 한다.
국립특수교육원과 국립장애인도서관에서만 매년 40여억원 규모의 대체 자료 제작을 이곳 도서출판점자에 맡긴다. 김 대표는 "큰 금액이긴 하지만 매해 국내에 출판되는 전체 도서 신간의 약 5% 규모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국립특수교육원과 국립장애인도서관 등 정부기관의 의뢰로 제작하는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원문을 제공받아 작업 시간이 길지 않다. 두 기관이 요청한 도서가 아니라면 일일이 스캔 작업 등을 해야 한다는 것은 지역 도서관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대체 자료를 제작하는 이곳에서도 겪는 어려움이다.
다만 도서출판점자는 국내 대표적 점자 책 제작 업체인 만큼 상주 인력이 50여명이나 되고 분업이 이뤄져 비교적 작업 시간이 길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프린트, 제본 등 모든 과정이 완전히 자동화된 것이 아니고 사람의 손길이 필요해 점자 책은 아무래도 일반 도서보단 제작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출판사가 국립특수교육원 등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점자도서관이나 점자 책 제작 업체에도 원문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이 법에 명문화되면 더 많은 점자 도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31일 찾은 서울 성동구 (주)도서출판점자에서 'UV 점자' 제작을 위해 디자인 작업을 하는 모습. 2024.10.31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 |
점자 책은 일반적으로 종이를 눌러 제작하는 '천공 점자' 방식이다. 도서출판점자는 종이에 특수 잉크를 물방울 모양으로 올려 투명으로 보이도록 제작하는 'UV 점자'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인쇄물에 담긴 그림을 그대로 본 따서 촉각화할 때도 이 기술이 쓰인다.
시각장애인이 아니어도 점자가 적힌 인쇄물을 불편함 없이 접할 수 있도록 최근 이 기술을 적용한 점자 책 제작이 늘어나고 있다. 도서출판점자는 UV 잉크가 종이에 번지지 않도록 인쇄 종이에 특수한 질감 처리를 하는 특허 기술도 가지고 있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사회에서 도서 등 모든 인쇄물에는 일반 글자와 점자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 대표는 "'UV 점자' 등 새로운 점자 기술들은 장차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누구나 차별 없이 시설, 공간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디자인)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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