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듯한 아메리칸드림의 기회를 미래 세대를 위해 되살리겠습니다." 앤디 김이 정치에 뛰어든 이유다.

뉴저지는 소위 '정치 기계(machine politics)' 최후의 보루라고 불렸다. 보스 정치인의 절대적 영향력과 기업의 이해관계가 허울 좋은 전통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다 지난해 터줏대감 밥 메넨데스 상원의원(민주당)이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연방의회 경력 5년에 불과한 하원의원 앤디 김은 메넨데스의 사퇴를 촉구했고, 상원의원 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앤디 김이 출마한 뉴저지주는 지난 1972년 이후 민주당이 줄곧 상원을 배출한 텃밭이다. 하지만 당내 경선에서 뉴저지 주지사의 부인 타미 머피라는 큰 산을 넘어야 했다. 정치 경험은 없지만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머피는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앤디 김은 기득권 정치에 염증을 느껴온 유권자를 공략했고 여론조사에서 반전을 만들었다. 결국 머피 후보는 경선을 포기했다.

앤디 김의 승부사 기질은 또 한 번 발휘됐다. 구태 정치·패거리 정치의 폐단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뉴저지주의 카운티 라인(County Line) 혹은 파티 라인(Party Line)이라는 투표용지다. 당 지도부가 지지하는 후보들은 투표용지 첫 번째 칸에 기재하고, 이외의 후보들은 듬성듬성 배치한다. 앤디 김은 연방법원에 소를 제기했고, 위헌 판결로 카운티 라인 투표용지 사용이 금지됐다.

앤디 김은 미 연방의회 235년 역사상 최초의 한국계 상원의원이 됐다. 미국 이민이 시작된 지 120여 년 만이다. 이민자들이 미국 정치권에 입성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미국 정치의 꽃인 의회 입성은 영향력의 척도다. 역대 한국계 3선 하원의원은 앤디 김을 포함해 1992년에 첫 입성한 김창준과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영 김, 미셸 박 스틸, 메릴린 스트리클런드 등 5명뿐이다.

상원은 연방정부의 임시예산안 의결권과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 동의권을 가질 정도로 파워가 막강하다. 도전과 개혁을 증명해온 앤디 김의 더 큰 행보가 주목된다. 앤디 김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 아프가니스탄 주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사령관 참모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라크 담당 보좌관을 지냈다. 준비된 외교 전문가로서 한미 동맹과 한국계 위상 강화의 징검다리 역할을 기대해 본다.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