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의 많은 도예공방 가운데 흔치않게 유약을 바르지 않는 '무유소성 기법'을 활용해 만드는 도자기. 국내서도 많이사용하지 않는 이 기법은 일반 도자기처럼 초벌, 재벌구이가 없으며 장작을 태울 때 날리는 재가 기물에 묻어 자연스럽게 유약의 효과를 내는 작업이다. 다시말해 '흙과 불의 느낌을 가장 잘 나타내는 기법'으로 작품에서 흙의 느낌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 작업은 아궁이 밑에 공기구멍을 낸 특수개량형 장작 가마를 사용하는데 소성시간은 가마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4일, 많게는 6~7일의 시간이 걸린다. 공기구멍을 내는 이유는 많은 양의 장작(5트럭 1.5대 분량)을 장시간 태워야 하기 때문에 숯이 쌓이지 않고 빨리 재로 삭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 조상들이 그릇을 굽다 우연히 자연유약을 발견하게 된 도자기에 현대적 미를 가미, 재창조 작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는 "자연유약은 토기에 달라붙은 나뭇재가 고온에 녹으면서 형성되기 때문에 무유소성 기법이 전해진 것은 제대로 된 가마형태를 갖춘 통일신라시대 전후"라고 말했다.
그의 무유소성 기법은 청자나 백자를 만드는 것처럼 전통에 기반을 둘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기법은 국내에서 그 맥이 계속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신라·백제토기, 기와, 떡시루 그리고 지난 60년대 플라스틱용기에 밀려 사라졌던 제주 옹기에서 그 잔재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은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그의 작품은 옹기토 30%에 백자·청자토에 돌이 되다만 장석알갱이를 배합해 흙의 태가 여러가지 색감을 나타나는데 불길이 닿은 곳은 진갈색, 불길이 약한 뒤쪽은 연갈색과 노란색 등 온도까지 영향을 미쳐 만들어지는 작품마다 형태며 느낌이 천태만상이다. 또한 옛날이라면 새우젓을 담갔음직한 길쭉한 항아리와 화병, 술잔, 다기, 접시 등 그의 작품들에는 한국 전통의 미가 고스란히 배어있어 넉넉하고 푸근하다.
오산이 고향인 그는 청주대와 경희대 대학원 도예과를 졸업해 30여년째 도예와 인연을 맺고 있다. 1985년 국전(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우수상 수상과 1989년 경기도 미술대전에서 추천작가상을 수상할만큼 작가적 역량을 높게 평가받은 중견도예가이다. 그리고 몇년전까지 대학 강의를 했고 지금은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는 무유소성 기법을 배우기 전 상당기간 동안은 다른이들처럼 유약을 사용했으나, 우리 역사의 면면한 숨결과 의식을 되살려 보자는 전통에 대한 관심은 도예 입문때부터 간직했었다. 그가 청동기시대 삼족기(三足器) 작업에 천착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전통의 맥을 차용해 완전함, 균형, 영원성 등을 추구하고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도예는 기다림의 예술입니다. 흙의 선택에서 반죽, 성형, 건조 등을 거쳐 결실을 보기까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작가는 흙과 불은 거짓이 없으며 모든 제작 과정에 얼마만큼 정성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작품이 달라진다고 한다. 어찌어찌 만들다 보니 잘만들어 지는 경우는 결코 없단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을 전시장에 내 놓으면 사람들이 그걸 알아보고 제일 먼저 사간단다.
가마뫼의 개인 전시장에는 수백여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 하나하나에는 투박하지만 정겨움이 물씬 묻어난다. 우리네 사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의 진실과 정성, 인생 철학이 담겨있다. 그가 살아온 삶의 조각들이다.
"흙은 억겁의 세월동안 생명이 나고 돌아가는 고향이어서 늘 그립기만한 어머니의 가슴입니다." 그래서 그
불이 활활 타오르듯, 그가 만든 도자기에는 혼이 번뜩인다. 공방 앞 흙길 양지엔 민들레가 싹을 틔우고 멀리 논바닥에선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그는 오늘도 또 하나의 새 생명체를 빚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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