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초점 맞춰 혼란기 중립지 위상정립 자평
연합신문 마지막 창간호 '경기신문' 새로움 기대
경기일보 '주마등처럼 추억의 장…' 종간호 소회
1973년 8월 경기매일신문은 지령 9천호 특집(8월10일자·사진 왼쪽)을, 연합신문은 창간 13주년 특집(8월15일자)을 냈다. 폐간을 한달도 남기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양사는 대대적으로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경기매일은 1970년에 세운 7층 규모의 신사옥과 최신 윤전기 시설을 전면광고로 내보냈다. 연합신문은 1면에 홍대건 사장 명의의 글을 실었다. 홍 사장은 9월 1일 창간한 경기신문의 초대사장이 됐다.
1973년 7월 31일 '3사 통합대회'와 9월 1일 '경기신문 창간' 사이 경기매일신문은 지령 9천호(8월 10일자)를, 연합신문은 창간 13주년(8월 15일자) 특집을 게재한다.
이 특집들을 통해 각 신문사가 보는 통합의 시선을 감지할 수 있다.
경기매일은 '지난날'에 초점을 맞춘 반면, 연합신문은 '앞날'에 중점을 뒀다. 공통점은 특집기사를 8면(평상시 4면)으로 증면한 것과, 3사 통합의 과제로 '유신과업 수행'을 꼽은 데 있다.
경기매일은 지령 9천호 특집 1면 사설에서 '애환 얼룩진 금자탑'이란 제목의 글을 싣는다. 1945년 10월 7일 대중일보에서 시작된 경기매일의 역사를 한줄기로 꿰었다.
한국전쟁 전후에는 '혼란기 조국의 흥망을 짊어지고 전진'했고, 자유당 시절에는 '신문망국론 속에서도 중립지로서 위상을 정립'했고, 5·16 이후에는 '새마을운동과 유신과업 수행의 기수'였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이 사설에서 경기매일은 '오는(8월) 31일로 역사적인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경기신문으로 발전적인 일대통합을 한다'고 썼다. 같은 날짜 3면에서 3년 전 사진을 비중있게 보도한 것도 특이하게 다가온다.
1970년 10월 경기매일 송수안 발행인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국민훈장모란장을 받는 사진이었다. 같은 지면에는 '인천지방신문사고찰'이란 제목의 기획 박스기사를 내보냈다.
1896년 독립신문이 제물포에 분국을 개설하고 가두판매를 시작할 때부터 1945년 대중일보를 거쳐 1973년 현재까지 언론역사를 소개했다.
이 기사 마지막 부분에는 "3사가 통합하여 새로운 경기도 지방지를 창립하기로 합의한 만큼 1973년 9월 1일의 경기신문에 기대를 걸어본다"고 적혀 있다.
경기매일은 당대 문필가로 이름난 조수일 논설위원(전 경기매일 편집국장)의 글('9천층의 바벨탑')과 그의 아들 조우성 시인(현 인천일보 주필)의 축시('빛의 활자를…')를 게재했다.
이 밖에 '28년 독자 인터뷰', '만화로 본 9천호', '지령 9천호 전면광고' 등을 실었다.
이로부터 5일 뒤 연합신문은 창간 13주년 특집을 내보낸다. 1면에서 홍대건 연합신문 사장은 '건실은 부동의 진리'란 제목의 글을 싣는다. 이어 2면의 사설 제목은 '창간 13주년, 폐간 15일전'이었다.
이 두 글은 창간을 기념하면서 곧 태어날 경기신문의 당위성과 기대감을 표현하는 내용이었다.
사설은 "연합신문의 창간과 폐간은 유감없는 소멸이라는 데 특징이 있다"며 "경기3사의 통합은 발전적 의미와 분산세력의 규합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인 초연한 자율통합"이라고 했다.
또 이 사설에서는 연합신문이 과거 본사를 인천에서 수원으로 옮긴 것을 '역사에 오래 기록될 일'이라고 했다.
1969년 수원으로 본사를 이전한 것을 "황금기반이라고 공칭하는 인천을 버리고 신문의 불모지인 수원으로 신문사를 옮겨 놓은 결단"으로 표현했다.
경기신문 창간을 하루 앞둔 8월 31일. 경기매일은 침묵했지만 연합신문과 경기일보는 폐간에 대한 여러 기록을 지면에 남겼다.
신문 1면에 실리는 고정칼럼 필자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방식으로 감상을 남겼다. 연합신문의 '전망차'는 "비가내렸읍니다. 1973년8월31일 새벽부터는 스산한 초가을 비가 대지를 적시고 있읍니다"고 글을 시작해 "일희(一喜)와 일비(一悲)가 만감하는 순간입니다"며 끝을 맺었다.
경기일보 1면의 '만년필'은 "어떻게 하면 좀더 독자의 가려운 곳을 시원스럽게 긁어드릴 수 있을까 이모저모로 만년필을 입에 물고 이궁리, 저궁리해보던 나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며 추억의 장으로 넘어간다"며 종간호를 찍는 소회를 기록했다.
/김명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