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는 강화·옹진이 인천으로 편입된지 20년째 되는 해다. 인천의 품으로 들어왔지만 역사·문화·경제·사회 모든 면에서 소외된 채 인천으로부터 제대로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강화·옹진. 이제는 강화·옹진이 갖고 있는 가치를 되짚어보고 보듬고 끌어 안아 함께 해야한다. 지난 12월 26일 김포시 문수산 정상에서 바라본 강화도 전경. |
옹진, 서해 5도 품고 분단의 아픔 묵묵히 버텨
인천 편입 20년째 됐지만 여전히 아쉬운 관심
미처 몰랐던 두 섬의 '참 모습' 찾아 값진 여정
강화군과 옹진군이 1995년 3월 1일 경기도에서 인천의 품으로 들어왔지만 역사·문화·경제·사회 모든 면에서 소외된 채 인천으로부터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강화·옹진 사람들의 분노가 기사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39년간 고려의 전시 수도로서, 남한 내에서 흔치 않게 고려가 남긴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섬 강화. 그리고 분단의 상처를 현재진행형으로 버텨내고 있는 서해5도를 품으며 천혜의 자연 경관과 어족자원, 해양문화를 보듬고 있는 옹진.
경인일보가 2015년 연중기획 대주제를 '강화·옹진'으로 정했다. 올해는 강화·옹진이 인천으로 편입된 지 20년째 되는 해이다. 강화·옹진이 갖고 있는 가치를 되짚어 보고 인천이 왜 강화·옹진을 다듬고 끌어 안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려 한다. 한마디로 강화·옹진에 관심 좀 가져달란 얘기다.
강화가 어떤 고장인가. 한반도에서 고인돌로 대표되는 선사시대 유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 39년간 고려의 전시 수도로서 역사의 중심에 있었고 이 기간 팔만대장경이나 금속활자 같은 민족문화의 정수를 생산해 낸 섬, 고려의 문학과 사상, 예술이 꽃피우기도 한 곳이 바로 강화였다.
조선시대에도 강화는 한양의 인후(咽喉), 보장지처(保藏之處)로서 민족 역사의 한가운데서 왕조의 위기를 극복하고 대처해 나가려던 결의가 충만했던 곳이었다.
이런 역사·문화적 중요성 외에도 세계 5대 갯벌로 불리는 강화 갯벌 등 이 섬만이 간직하고 있는 자연 경관은 대대손손 물려줄 인천의 가장 큰 자산이다. 강화에서 자란 인삼, 순무, 약쑥, 왕골은 인천의 토산품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고, 강화 앞바다에서 잡은 추젓 새우는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할 만큼 유명하다.
100개의 섬으로 이뤄진 옹진군은 또 어떤가. 옹진군이 끌어 안고 있는 백령, 대청,연평도 등 서해 5도는 남북분단이란 민족의 아픔을 온몸으로 버텨내고 있는 섬이다.
반대로 말하면 섬이 갖고 있는 이런 특수성 때문에 남북 대치 상황에서 가장 먼저 평화를 얘기하고 민족화해를 외칠 수 있는 곳이 바로 서해5도이기도 하다.
또 옹진군이 갖고 있는 천혜의 자연 경관은 국가지질공원으로 논의될 만큼 가치가 크다.
백령도에 있는 습곡구조를 비롯해 콩돌해안, 사곶해변, 현무암 분포지, 소청도 분바위, 신도 괭이갈매기 번식지, 대청도 동백나무 자생 북한지(北限地) 등 인천의 14개 천연기념물 중 9개가 옹진군에 몰려 있다. 강화도까지 합치면 13곳으로, 인천지역 천연기념물 대부분이 강화·옹진에 몰려 있다.
인천의 문화적 다양성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곳 또한 옹진이다. 옹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갯놈', '섬사람' 등으로 불리며 차별받아 왔다. 어족자원은 풍부했다. 한편으로는 바다를 통해 격리된 자신들의 공간을 십분 활용해 '섬 문화'라는 새로운 문화적 공간을 창출해 내기도 했다.
▲ 인천시 옹진군 덕적군도의 섬들. |
이와 함께 섬마다 가진 독특한 문화·역사적 바탕아래 전해 내려오는 각종 풍어제와 굿 등 어로신앙은 섬을 품은 도시만이 가질 수 있는 문화적 선물이다.
경인일보 기자들은 올 한해 배를 타고 다리를 건너 강화·옹진 구석구석을 돌아볼 예정이다.
강화·옹진 사람들이 품고 있는 숨은 이야기들을 찾아 내고, 이 고장이 담고 있는 유형, 무형의 가치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가슴 속으로 느낄 것이다. 상반기 강화, 하반기 옹진으로 나누어 1년간 진행될 이 여정에 독자들이 길벗을 해줬으면 한다.
글 = 김명호기자·사진 = 임순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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