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천은 참 넓은 고장입니다. 인구도 세 번째로 많은 도시입니다. 인천이 언제부터 이렇게 커졌을까요?

현재의 인천은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서로 다르게 발전해온 4개의 행정구역이 합쳐져 만들어졌습니다. 인천, 부평, 강화, 교동이 바로 그것이지요. 강화와 교동은 섬이었기 때문에 뚜렷하게 구분이 됩니다. 그럼 인천과 부평은?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지금의 부평구·계양구·서구지역이 옛 부평이었고, 남구·중구·남동구·연수구 지역은 옛 인천이었습니다.

그럼 무얼 보고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잘 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여러 옛 지도를 살펴보세요. 분명히 네 개의 독립된 행정구역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확인해 볼 수는 없을까요?

하나의 독립된 행정구역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지방관이 해당 지역을 다스리는 관청이 있어야 합니다. 또 조선시대에는 모든 지방행정기관에 중등학교인 향교를 한 개씩 두었습니다.

또한 전쟁이 발생하거나 갑작스런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 백성들이 피신할 수 있는 산성이 있어야 합니다. 최소한 관청·향교·산성 이 세 가지를 갖춰야 독립된 지방행정기구라고 할 수 있지요.

옛 인천지역에는 관교동에 인천도호부청사와 인천향교, 그리고 문학산의 문학산성이 있습니다. 옛 부평지역에는 부평도호부청사와 부평향교, 그리고 계양산에 계양산성이 있습니다. 강화성 안에도 강화부청사와 강화 향교가 있고, 교동에도 읍성과 화개산성, 교동부터와 교동향교가 남아있어 각기 다른 행정구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독립적으로 발전해 오던 인천과 부평은 개항 이후 외국인들, 특히 일본인들이 몰려들면서 1914년 일본인들이 모여 살던 제물포 지역을 인천부로 정하고 기존의 인천과 부평지역은 통폐합해 새로운 지명, ‘부천’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인천부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부천지역을 조금씩 편입했고 과거 인천과 부평지역이 대부분 인천부로 편입돼 해방 후 인천시, 인천직할시를 거쳐 인천광역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럼 남아있던 부천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대부분의 땅이 인천시에 편입되고 남아있는 지역은 현재의 경기도 부천시가 되었습니다. 부천이 한때는 인천과 부평의 이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흔적이 있습니다. 부천시 오정구에 있는 수주초·중·고이지요. 수주는 고려시대 때 불렸던 부평의 옛 이름입니다.

그 외 지역인 교동은 1914년 강화군에 편입이 되고 강화는 1995년 인천광역시에 편입이 돼 현재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문학산 일대의 작은 고을이었던 인천이 부평·강화·교동을 함께 아우르면서 지금의 인천광역시가 된 것이지요.

/이제은 계산여중 역사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