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미미했다. 아마추어 사이클 선수 출신 브라이언 포겔은 어느 날 문득, '도핑을 해도 적발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진다. 약물복용으로 2012년 미국반도핑기구로부터 영구제명된 랜스 암스트롱이 모티브를 제공했다. 암스트롱은 고환암을 극복하고 일궈낸 인간 승리 드라마로 전 세계에 감동을 전한 사이클계의 영웅. 1999년부터 7회 연속 '투르 드 프랑스' 우승을 차지했다. 그동안 500번에 가까운 도핑 테스트에서 모두 음성판정을 받았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처음엔 그저 암스트롱의 약물복용만 다루려고 했다. 하지만 러시아 도핑 프로그램 책임자 그레고리 로드첸코프를 만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그의 입에서 러시아 체육계의 불법적인 도핑테스트 실태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를 다룬 게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선 진실을 알리는 게 혁명이다'라는 조지 오웰의 글로 시작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이카루스'다. 내부고발자 그레고리는 살해 위협에 시달리다 미국으로 망명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러시아 참가가 금지되고 러시아 국적 선수들이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하는데 '이카루스'의 영향이 컸다. 이 영화는 지난해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포겔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이 상을 지금 위험에 처해있는 휘슬 블로어(내부고발자)에게 드린다. 지금은 진실을 말하는 게 중요할 때"라며 조직 내 비리를 용기 있게 폭로하는 내부 고발자들의 헌신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국가 권력의 음모를 폭로하는 수단으로 다큐멘터리 영화가 종종 이용된다. 전달하려는 주장이 분명하고 설득력도 높아서다. 로라 포이트라스 감독의 '시티즌 포'도 그중 하나다. 에드워드 스노든. 그는 NSA(국가 안보국)의 정보분석 요원이었다. NSA가 무차별적인 도·감청을 저지르자 내부고발자가 됐다. 감독은 기밀문서 폭로로 미국정부의 1급 수배자가 된 스노든을 만나 그와 대화한 모든 과정을 필름에 담아 2014년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유튜브를 통해 '1인 셀프 폭로'를 한 내부고발자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연일 뉴스의 중심에 서 있다. 기자회견장에서 "공익 제보자라도 어두운 곳에 숨어다닐 필요없이 얼마든지 즐겁고 유쾌하게 폭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소셜 네트워크의 파괴력은 다큐멘터리 영화보다 더 강하다. 내부폭로에 영화처럼 긴 과정도 생략된다. 제작도 신속하고 반응도 즉각적이다. 바야흐로 세상이 바뀐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