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이영미술관] 개발에 묻힐… 자연 그리고 예술혼

■ 이전 앞둔 이영미술관

 그리운 벗을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길을 나섰다. 용인 이영미술관. 돈사(豚舍)를 개조해 만들었다는 이 미술관은 용인 흥덕택지개발지구 개발로 이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술관 가는 길의 이정표는 쓸쓸하기만 하다. 간신히 도로만 남겨두고 모든 것이 사라졌다. 미술관도 집채만한 흙더미에 곧 파묻힐 기세다. 이영미술관은 어떤 생각에 잠겨 있을까.

 흙먼지 풀풀 날리는 황톳길 비탈을 넘어 서자 저 멀리 이영미술관이 납작 엎드렸다.
 올초부터 택지개발지구 토지조성 작업이 시작되면서 미술관 가는 길은 온통 황토 천지다. 용인 흥덕지구라고 한다. 이 일대가 모두 수용되면서 식당과 살림집들도 이미 흔적없이 사라졌건만 미술관만이 옹고집을 피우고 있는 형국이다.



 3년전 처음 이영미술관을 찾아갈 때의 당혹감도 이러했다. 수원 영통입구 고가도로 옆으로 삐친 좁은 골목을 타고 들어서자 언제 도시를 빠자나왔나 싶을 정도로 금세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풍요롭고 한가로운 시골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왠지 어수선한 게 새마을운동을 하다만 듯한 촌티나는 곳이었다. 도대체 미술관 따위와 어울리지 않을성 싶어 몇번을 되돌아갈까 망설이던 찰나에 마주친 미술관이 어찌나 반갑고 신기하던지.

 첫 방문처럼 이번에도 아직 미술관이 남아 있을까 하는 의심을 달고 고개를 넘어선 것이다. 고맙게도 아직 미술관은 살아있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흙더미에 짓눌려 금세 탈진할 것만 같았지만 그래도 미술관은 숨을 쉬고 있었다.

 공식적으로는 지난해 12월18일 막을 내린 전혁림 특별전 '구십, 아직은 젊다'가 아직 그 푸른 빛을 잃지 않고 맞아줬다. 정수자 시인의 헌시처럼 '통영이 싯푸르게 걸어나오는 듯' 했다. 전시실까지 파고드는 포클레인의 굉음도 그 순간만큼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고 나이 구십에 아직까지 붓을 놓지 않는 노인의 열정과 이미 끝난 전시회를 몇달째 끌고가는 또다른 노인을 생각했다.

 바로 이영미술관의 김이환(71) 관장이었다.
 이영미술관이 여느 미술관과 다른 것은 '가는 길'의 독특함도 있지만 전시장의 배치와 생김새도 빼놓을 수 없다. 미술관이 자리잡은 덕곡마을과 김 관장이 인연을 맺은 것은 80년대 중반. 당시 덕곡마을은 돼지를 치는 농가가 많았는데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했던 그도 이곳에서 돈사를 짓고 3천마리 가량 돼지를 키웠다고 한다.

 그 돈사를 뜯어내지 않고 개조해 2001년 지금의 미술관이 탄생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주변 산세를 거스르지도 않고 '촌스런' 마을과도 잘 어울렸다.
 정원의 석상과 전시관 사이를 잇는 목침길 그리고 뒤란의 장독까지 그의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다. 박생광과 전혁림으로 대표되는 이곳의 그림들도 매력적이지만 전시관과 주변 정물들이 주는 친숙함과 안락함은 이영미술관만의 매력이다.

 하지만 이사를 앞둔 미술관의 정원은 쓸쓸했다. 석상과 멧돌들이 나무궤짝에 실려 옮겨질 날만 기다리고 있고 뒤뜰의 벤치도 사라졌다.
 인근 골프장 너머에 새로 짓고 있는 미술관은 현대식 건물이라고 한다. 올 여름이면 돈사로 만든 전시장도 사라지고 철로의 폐목침에서 나던 기분좋은 역청 내음과 뒤뜰 옹기와 그 너머 청태 낀 낡은 기와지붕의 폐가가 만들어낸 그 기막한 앙상블도 모두 내려놓고 가야할 듯 싶다.

 “봄이라 소풍 삼아 주민들이 많이 왔을텐데….”
 큐레이터 박연진씨는 “이 황톳길을 뚫고 오신 분들께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했다.
 그래서인가 주인장은 “해질녘이면 주저앉고 싶다”고 했단다.
 모두 보상받고 떠난 자리에 미술관이 남아있다. 수원 영통신도시와 용인 수지신도시 사이에 고립된 섬, 그곳에 돼지를 키우던 미술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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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훈기자

paperhoo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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