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심판론이 야당심판론을 눌렀다'

4·13 총선이 개표 직전까지만 해도 결과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혼전을 거듭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여소야대(與小野大)라는 야권의 승리로 귀결되자 여야 간 승패 요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은 야당이 제기한 정권심판론이 유권자에게 설득력있게 다가선 상황에서 공천 파동이라는 계파갈등까지 터지는 바람에 백약이 무효인 상황을 초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심판론이 호소력을 지닌 가운데 선거전 막판 수도권 집중전략, 사표 방지를 위한 전략적 투표 호소 전략이 빛을 발했다는 시각이다.

국민의당은 거대 양당의 구태정치 심판을 내건 안철수 공동대표의 '새정치론', '제3정당론'이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였고, 더민주의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에 지친 호남의 전폭적 지지가 예상밖 낙승의 요인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공천 파동'이 패착…與 지지층도 '오만'에 돌아서 = 새누리당의 패인에 공천 파동이 가장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데는 당 안팎의 의견이 거의 일치한다.

경선을 통한 전면 상향식 공천을 주장한 김무성 대표와 단수·우선추천을 통해 사실상 과거의 전략공천 방식을 확대하려는 친박(친박근혜)계는 공천 초기부터 사사건건 충돌했다.

이미 지난해 9월 공천룰 결정을 위한 특별 기구 구성을 놓고 벌어지기 시작한 양측의 갈등은 올해 2월 공천관리위(공관위) 이한구 위원장 선임 때까지 수개월 동안 이어졌다.

공관위가 구주류 친이(친이명박)계 좌장 격인 이재오 의원을 경선 참여 기회도 박탈한 채 컷오프하고,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로 낙인 찍힌 유승민 의원에 대한 공천을 끝까지 미루면서 계파 갈등은 극에 달했다.

벼랑 끝에 섰던 이들은 결국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택했고, 김무성 대표는 공관위의 심사에 반발하며 공천장에 대표 직인을 찍지 않는 이른바 '옥새 투쟁'을 벌이면서 '정신적 분당' 사태까지 이르렀다.

야권이 현역 물갈이를 통해 개혁을 앞세울 때 집권 여당은 야권 분열에 따른 반사 이익을 기대하며 '밥그릇 싸움'이나 벌인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오만하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상향식 공천은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선거 전략 상으로는 패착으로 귀결됐다.

경선 뚜껑을 열어보자 최악의 국회로 평가받은 19대 국회의원에 대한 물갈이 열망이 높은 상황에도 대거 현역 의원이 공천을 다시 받으며 애초 예견됐던 '현역 프리미엄' 효과가 입증됐다.

이른바 친박계의 '진박 후보론'도 역풍을 맞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치적 심장부인 대구 유권자들은 "표를 맡겨 놨느냐"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낙하산 공천'에 싸늘히 민심이 돌아섰고, 선거 전체 판세에도 파장을 미쳤다.

공천 파동의 여파로 선거 운동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론이 악화됐다는 서울, 수도권 의원들의 하소연은 현실화 된 셈이다.

이와 함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같은 경제 활성화법이나 노동개혁법, 테러방지법 통과의 발목을 잡는다며 야당을 비판했던 '야당 심판론'도 결과적으로 유권자가 받아들이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오히려 현 정부의 무리한 재정 확장과 대기업 편향 경제 정책 등을 강하게 질타하며 '정권 심판론'을 앞세운 야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경제실정 심판론'이 수도권 민심 움직였다 = 더민주는 기본적으로 선거 프레임으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의 경제심판론이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평가를 내렸다. 김성수 대변인은 "수도권 민심은 어떻게든 새누리당을 심판해야겠다는 심리가 강했던 것같다"고 말했다.

선거전략상 수도권 집중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민주는 선거전 초반 호남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돌아선 민심 회복에 나섰지만 그 결과로 수도권 선거전이 흔들린다는 판단이 나오자 수도권에 화력을 총동원하는 자세를 취했다.

이런 전략은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의 낙승을 통해 성공한 셈이 됐지만 호남까지 그 바람을 내려보내겠다는 계획은 호남 참패라는 결과가 나옴에 따라 희망사항으로 끝나게 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표가 호남의 반전 기회를 잡기 위해 정계은퇴 배수진을 치는 승부수를 던졌음에도 반문(반문재인) 정서를 극복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풀어야할 숙제로 남게 됐다. 더민주가 선전했지만 절반의 승리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성수 대변인은 "유권자들이 수도권에서 정권을 심판했지만 호남에서는 우리가 심판 당했다"고 말했다.

야권 지지층을 향해 90석 달성도 쉽지 않다고 위기감을 전파하며 사표(死票) 방지를 위해 지역구 투표만큼은 더민주 후보에게 몰아달라고 전략적 투표를 호소한 것이 박빙 승부가 벌어진 선거구에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야권분열이 역설적으로 야권 지지층의 위기감을 고조시켜 더민주로의 전략적 투표 성향을 강화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김 대변인은 "야권 지지층이 단일화가 이뤄지지 못한 불안심리 때문에 야권이 망할 수도 있겠구나 해서 2번을 찍은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양당 기득권 타파론'도 먹혔다 = 국민의당은 안철수 대표라는 대선주자가 전면에서 선거전을 진두지휘한 '안철수 효과'와 호남의 전폭적 지지가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국민의당은 창당 과정 때만 해도 '안철수 사당(私黨)' 비판을 의식해 안 대표의 2선후퇴론이 나왔지만 대선주자급인 당의 간판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선거전략상 맞지 않다는 여론이 비등하면서 안 대표를 전면에 내세웠다.

실제로 안 대표는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유세 지원을 가는 곳마다 지지층이 장사진을 이루는 등 '녹색 바람' 확산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정배 공동대표(광주), 박지원(전남) 의원, 정동영(전북) 전 의원 등 호남 내 영향력이 큰 정치인들이 안 대표와 손을 잡고 '호남 벨트'를 구축한 것도 호남내 압도적 승리의 동인이 됐다.

무엇보다 안 대표가 새누리당과 더민주 등 양당 독점체제를 비판하면서 제 3의 원내교섭단체 출현을 통해 갈등과 대립의 구도를 깨야 한다고 주창한 제3정당론이 새누리당 표까지 잠식하면서 먹혀들었다는 평가가 많다.

이상돈 상임선대위원장은 "국민의당이 야권표를 나눠가졌다기보다는 기존 여권 표를 상당히 많이 가져온 것으로 생각한다"며 "새누리당을 지지한 합리적 보수 유권자가 상당히 이탈해 우리를 지지하지 않았나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김한길 의원의 공동선대위원장 사퇴까지 불러올 정도로 당내 갈등을 겪은 당대당 야권 연대에 대해 불가론으로 맞서며 지역구 후보를 최대한 배출한 것이 결과적으로 비례대표 득표전에 도움이 됐다는 시각도 있다.

또 공천 과정의 각종 파열음, 야권연대를 둘러싼 당내 갈등 등 초기 악재를 털어내고 선거운동이 개시된 이후부터는 특별한 잡음 없이 선거전에만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도 득표율을 높인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