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스토리

[이슈&스토리] 어떻게 하다 프랑스로 가게 됐나

한국古書 수집한 프랑스 외교관

왕실로부터 선물 받았을 가능성
정리의궤 0036
빅토르 꼴랭 드 쁠랑시(Victor Collin de Plancy·1853~1922)
프랑스인 빅토르 꼴랭 드 쁠랑시(Victor Collin de Plancy·1853~1922)는 1888년 초대 한국 주재 대리공사로 임명돼 1891년까지 서울에 머물렀다. 그때부터 한국의 도자기와 고서(古書) 등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대사관의 서기관으로 서울에 부임해온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1865~1935)에게 책의 목록을 만들도록 권유하기도 했다.

쁠랑시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1년에 한 번씩 많은 양의 책을 수집해 자신의 모교인 프랑스 동양어학교에 보냈는데, 이때 정리의궤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5년간 일본에 근무한 그는 다시 한국 주재 프랑스 공사로 임명돼 1896년부터 1906년까지 10년간 총영사 겸 서울주재공사로 한국에 머물렀다.

그는 외교관으로서 우리나라에 두 차례씩이나 머물면서 동양에 대한 폭넓은 교양을 바탕으로 고서 수천 점을 수집했으며, 정리의궤 외에도 세계최초 금속활자본으로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된 '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하권도 수집해 프랑스로 보냈다.



그가 어떻게 정리의궤를 손에 넣었는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물물교환, 금전 거래 등을 통해 고서를 수집했던 이력으로 봤을 때 당시 정리의궤를 왕실로부터 선물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리의궤를 세상에 처음으로 소개한 책은 모리스 꾸랑이 1901년에 발행한 '조선서지(朝鮮書誌)'다. 이 책은 3천821종의 국내 고서적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있는데, '정리의궤는 13책, 2절판(45×32㎝).

매우 정성들인 필사본. 1796년, 1797년의 의식과 수원에서의 건립과 관계된 한글본문. 39책(성역도)은 화성성역의궤와 마찬가지로 수원을 매우 세밀히 소개하는 그림을 싣고 있다'고 묘사했다.

전경목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 교수는 "정리의궤가 해외에 나가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깝지만, 약탈 된 문화재가 아니기에 문화재 환수를 추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며, 오히려 이를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복제본을 만들어 세계에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

경인일보 포토

김선회기자

ksh@kyeongin.com

김선회기자 기사모음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