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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스토리] 7월 30일 도시철도 2호선 개통… 인천철도의 과거와 현재

1899년 한국철도의 출발점 '교통혁명은 계속된다'
7월 30일 도시철도 2호선 개통… 인천철도의 과거와 현재

인천항~내륙 연결위해 경인철도 들어서 '일일 생활권' 실현
1974년 경인전철 시대… 수인선 43년만에 송도~인천 재개통
인천도시철도 1호선 개통 후 7호선 등 환승으로 접근성 향상
2호선 X자 연결 '남북 교통망' 보완… 하루 26만명 이용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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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는 인천 제물포에서 서울 노량진까지 33.2㎞를 연결해 1899년 9월 18일 개통한 경인철도로부터 출발했다. 경인철도는 당시 육로로만 12시간이 걸리던 인천과 서울의 거리를 약 1시간 40분으로 좁히는 '교통혁명'을 가져오며 당시 조선, 그 속의 인천에 근대 문명의 광풍을 더욱 빠르게 불어넣었다.

1883년 인천항(제물포) 개항에 이은 경인철도 개통으로 인천은 물류유통의 중심지라는 지정학적 특성을 확고히 다졌다. 그러나 인천이 일본 식민지화와 수탈의 관문이 되고 마는 비극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이렇듯 인천의 철도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욕의 역사와 함께했다.



인천 산업화의 첨병으로서 도시 발전을 이끈 반면, 서울에 대한 종속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은 '양날의 칼'이었다. 인천시가 민선 6기 주요 공약으로 인천 광역·도시철도망 구축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 언뜻 아이러니하게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인천시가 새롭게 꺼낸 카드는 전방위적인 철도망 구축을 통해 기존 철도망의 폐쇄성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서울로 향하도록 깔린 기존 철도망을 인천이 '기점'이 되도록 바로잡고, 인천 안에서의 철도를 사방으로 틔워 시민들이 인천의 '안과 밖'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인천 중심 철도망'을 완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민선 6기 후반기 시정 방향으로 설정한 '인천 주권시대'의 4대 분야 중 하나인 '교통주권'의 핵심이 바로 철도다. 인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인천발 KTX 사업',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인천도시철도망 확대' 등 철도 교통망 확충 계획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인천에 최초의 철도가 놓이다

조선 말 개항으로 서구 문물의 국내 유입 통로가 된 인천 제물포에 최초의 철도가 깔린 것은 필연적이었다. 한반도가 열강의 각축장으로 전락한 조선 말기, 각국의 사업 확장을 위해 인천항과 내륙 간 대규모 물자를 수송할 교통수단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원해서 경인철도가 탄생한 것은 아니었다. 경인철도 부설권은 1894년 일본이 처음 따냈다가 미국인 사업가 제임스 모스(James. R. Morse)에게로 넘어갔는데, 개통을 얼마 남기지 않은 1899년 1월 또다시 일본이 부설권을 인수해 철도를 완성했다.

인천 제물포와 서울 노량진 간 33.2㎞ 구간을 처음 달린 기차는 미국산 모걸(mogul) 증기기관차로 350마력에 최고 속도가 시속 60㎞였는데, 실제로는 시속 20~30㎞ 속도로 운행했다고 한다. 개통 당시 4대의 증기기관차가 객차 6량, 화차 28량을 싣고 하루 4회씩 운행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가는 시간이 육로 12시간에서 기차로 약 1시간 40분으로 줄어들면서 인천과 서울이 '일일 생활권'으로 묶이게 됐다.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한때 운행을 중단했던 경인철도는 1960년대 국가 수출전진기지로서 인천에 대규모 공단이 들어서자 물류 수송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 정부는 경인철도가 폭주하는 수송량을 감당하지 못하자 1965년 동인천~영등포 구간을 복선화했다.

1974년 8월 수도권 전철화 계획으로 인천~구로 27㎞ 구간이 전철화하면서 경인철도는 '경인전철'의 시대를 맞는다. 현재 20개 역을 지나는 경인전철은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48만 명이 이용하는 인천~서울 간 주요 대중교통 수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일제 강점기인 1937년 7월 19일 개통한 수인선은 수원을 비롯한 경기도 내륙과 인천을 연결하는 총연장 52㎞ 구간의 철도였다.

수인선은 레일 간격이 일반 선로의 절반 정도인 763㎜의 협궤선으로 '꼬마열차'로도 불리며 해방 이후부터 1973년 인천~송도구간이 폐선되고, 1995년 전 구간 운행을 중지할 때까지 서민들이 애용했다. 수인선에 대한 향수를 가진 중장년층이 꽤 많다고 한다.

수인선 또한 경인철도와 마찬가지로 일제가 쌀과 소금을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위한 수탈의 수단으로 만든 철도였다. 강원도 내륙의 목재와 경기도 여주·이천에서 농사지은 쌀을 수송하기 위해 부설한 수여선(수원~여주)과 연결됐다.

일제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을 치르며 '조선 병참 기지화' 정책을 추진한 1930년대 말부터 경인철도는 부평에 있던 일본 육군조병창(군수공장) 등과 연계한 군사적 목적으로 주로 쓰였고, 수인선은 곡식 수탈 통로로 활용됐다.

인천 철도 기획 인천지하철 2호선
인천지하철 2호선 열차의 서창 차고지. 서구 검단오류역부터 남동구 운연역까지 29.2㎞ 구간을 연결하는 인천 2호선은 1호선과 '엑스(X)자' 형태로 교차한다. /경인일보 DB

# 인천 도시철도 시대의 개막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수인선은 2004년부터 수도권 서남부 교통난 해소를 위한 '수원~인천 간 복선전철' 공사가 시작되면서 부활했다. 특히 올해 2월 수인선 2단계 사업인 송도역~인천역 구간이 43년 만에 다시 개통해 인천과 수도권 서남부권 간 연결성이 더욱 강화됐고, 역세권 개발 등을 통한 인천 구도심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동서축'이 중심이던 인천 철도 교통망은 2000년대 들어 인천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하면서 '남북축'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인천 1호선은 1993년 7월에 착공해 1999년 12월 연수구 동막역~계양구 귤현역 구간이 완성됐고, 2009년 송도국제도시까지 연결됐다. 계양구, 부평구, 남동구, 남구, 연수구 등을 잇는 29.4㎞ 구간 29개 역이 남북을 가로지른다.

인천 1호선 개통 당시에는 부평역에서 경인전철 환승만 가능했지만, 현재는 공항철도(계양역), 수인선(원인재역), 서울지하철 7호선(부평구청역) 환승이 가능해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다.

이번 달 30일 개통을 코앞에 두고 있는 인천도시철도 2호선은 인천 남북 철도교통망을 더욱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구 검단오류역부터 남동구 운연역까지 29.2㎞ 구간, 27개 역을 지나는 인천 2호선은 인천 1호선과 '엑스(X)자' 형태로 교차해 인천 도심을 채우고 있다. 인천시는 하루 평균 26만여 명이 인천 2호선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과 서울 도심을 잇는 인천공항철도 역시 인천지역에서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민간자본을 투입해 2007년 1단계 구간(인천국제공항~김포공항)을 개통한 데 이어 2010년 12월 서울역까지 58㎞ 전 구간을 개통한 인천공항철도는 인천 구간에서 7개 역(계양·검암·청라국제도시·영종·운서·공항화물청사·인천국제공항)을 지난다.

공항철도 청라국제도시역은 2014년 6월에, 영종역은 올 3월 추가로 문을 열었다. 특히 공항철도 검암역에는 KTX가 하루 22회씩 정차해 인천시민이 KTX를 이용하기 편리해졌다. 인천 2호선(검암역)이 개통하면 인천에서 KTX 접근성이 더 좋아질 전망이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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