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문 야경(사진제공 수원시)
팔달문 야경. /수원시 제공

수원의 주산 팔달산서 명칭 유래
정조 18년 착공, 2년 뒤 모습갖춰
각지 문명 소통하는 '수원의 꿈'
도덕정치의 간절한 염원도 담겨

양택(陽宅) 풍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문(門)이다. 문은 화복(禍福)이 출입하는 곳으로 안과 밖, 내외경계의 접점이며 집이나 도성의 가장 주요한 상징처이다. 1997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화성의 정문이자 미려한 문화재인 팔달문은 한국의 보물 제402호이기도하다.

광교산(光敎山)의 명당혈처(明堂穴處)로 한강 이남의 동서남북이 두루 조망되는 팔달산(143m)을 중심으로 5.7㎞에 걸쳐 펼쳐져 있는 화성은 조선 정조 18년(1794)에 짓기 시작하여 정조 20년(1796)에 완성하였다. 팔달문의 문루는 앞면 5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이며,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지붕 네 모서리의 추녀마루가 처마 끝에서부터 경사지게 오르면서 용마루 또는 지붕의 중앙 정상점에서 합쳐지는 형태의 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문의 바깥쪽에는 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해 반원형의 옹성(瓮城, 큰 성문 밖의 작은 성. 성문 밖에 부설하여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든든히 지키기 위하여 원형으로 쌓은 성)을 쌓았다.

이 옹성은 1975년에 고증을 거쳐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문 좌우의 성벽은 도시화로 헐어버려 현재는 문만 남아 있다.

팔달문의 명칭은 수원의 주산인 팔달산에서 연유한다. 팔달산의 명칭은 수주(水州, 수원의 고려시대 지명)의 광교산 남쪽에 있는 탑산(塔山)에 은거한 고려조의 절신(節臣) 이고(李皐, 1341~1420) 선생과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의 설화에서 유래한다.

정조의 시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 권177에 팔달문을 명명하는 전거가 나온다. "팔달문(八達門)은 산의 이름이 팔달이므로 문도 팔달이라고 하여 사방팔방에서 배와 수레가 모이는 곳이다.(八達門 山名八達門亦號八達 四通八達舟車之會也)"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첫 번째 의미는 순리를 따라 정치를 행하라는 뜻이다. 이고는 자기가 사는 산천의 훌륭한 경치를 극구 칭찬하면서도 "사통팔달하여 막힌 데가 없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말의 연원에는 도법자연(道法自然)의 원리, 즉 "대자연에 순응하는 진정한 기쁨"이 담겨 있다.

자연은 말 그대로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즉 순리다. 산 아래로 흐르는 물을 따라 꽃이 피고, 날마다 남쪽에서 봄이 올라오듯이 계절이 바뀌는 것도 자연이다. 반면 인세(人世)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자연스러운 것인가. 인위적으로 온갖 갈등에서 억지로 이루려고 하니까 힘든 세상이다.

말하자면 이고는 태조에게 치국과 정치의 요체가 자연의 막힘없이 흐름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자 한 것이다. 두 번째 의미는 문명세상(文明世上)을 실현하자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주거지회(舟車之會)'는 직역하자면 "배와 수레가 모이는 곳", 즉 교통의 요지를 뜻하는 것으로 문명의 핵심처를 나타내는 말이다.

정조도 '팔달문'이란 이름을 보면서 '각지의 문명이 소통하는 허브'로서의 수원의 꿈을 새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후세 사람들도 팔달문의 상량문(上樑文)에 '헌부담경(獻賦談經)'이라 하여 문학과 철학 및 역사를 논하는 풍경을 담아놓았다. 한편 '주역(周易)'에서도 성을 쌓고 연못을 파서 호위처를 만든 것은 64괘 중 하나인 사괘(師卦 : 땅 속에 물이 있음을 상징)를 본받아 민중을 기른다는 '휵중( 衆)'의 뜻이라 하였다.

부연하자면 '팔(八)'은 '대학(大學)'의 요체인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야 남을 다스린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팔조목(八條目)이며 '달(達)'은 '중용(中庸)'의 요체인 중화(中和)를 의미한다. (中也者天下之大本也 和也者天下之達道 致中和天地位焉 萬物育焉)

이렇듯 '팔달'의 뜻은 정치적·인문학적 의미가 담겨있다. 사람에게는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인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 있다. 다른 사람이 고통을 받거나 위기에 처하거나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모두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을 드러내게 된다.

이 불인(不忍)한 마음이 인심(仁心)이며 또한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선성(善性)이다. 그러므로 팔달에는 사람의 성정을 순화하고 천지와의 조화를 이룩하는 도덕정치를 성취하여 세계와 소통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자하는 간절한 기원이 깃들여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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