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련 시설등 하드웨어에 치중한듯한 느낌 강해
'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 희귀한 성공사례 중 하나
인천시, 시민들의 문화자생력 확보하는 일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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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
기타를 사랑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학교가 파하면 곧바로 스승의 집으로 가서 늦게까지 연습을 했다. 밥도 스승의 집에서 얻어먹기 일쑤였다. 스승이 이끄는 합주단의 공연현장에서는 맨 앞줄에서 두 손에 턱을 괴고 귀를 쫑긋 세웠다. 그 소녀가 숙녀가 되어 얼마 전 고향 인천의 무대에 섰다. 그 소녀는 어느덧 여덟 번의 국제 콩쿠르 우승이라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가 되어 있었다.

과연 그녀의 연주는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트레몰로 주법이 인상적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관객들을 스페인으로 안내하더니 '아라비아 기상곡'에서는 낙타가 거니는 중동의 사막에 관객들을 내려놓았다. 히나스테라의 '기타를 위한 소나타'에 이르러서는 현대 클래식 기타의 주법을 총동원해 세계정상급 기타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가녀린 손가락이 빚어내는 클래식 기타의 선율에 마법이라도 걸린 듯, 관객들은 숨죽이며 탄성을 자아냈다.

얼마 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2016 커피콘서트'의 풍경이다. '박규희의 여섯 줄에 담은 꿈'이란 제목의 이 연주회는 공연장을 나오면서 맡았던 커피향보다 진한 여운을 남겼다.

그런데 여운을 남기는 요소가 하나 더 있었다. 박규희 자신과 스승에 얽힌 기타리스트로서의 성장기이다. 바로 서두에 소개한 소녀의 이야기다.

공연 도중 그녀는 마이크를 잡더니 객석 한가운데서 연주를 감상하던 백발의 노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면서 "저분이 없었다면 제가 이렇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박수를 유도했다. 그녀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소개한 사람이 바로 그녀의 스승이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클래식 기타 오케스트라를 창단한 리여석 단장이다. 어찌 보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문화예술계에 시사하는 바가 큰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그 이야기는 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천의 한 여자중학교 교사였던 리여석단장은 고전기타합주단을 창단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어 학생들은 경기 중고등학교 음악 콩쿠르 현악부에서 수차례 우승하는 쾌거를 이뤘다.

'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는 바로 이 고전기타합주단이 모태다. 단발머리 여학생이었던 단원들은 상당수 성인이 돼서도 기타를 놓지 않았고 '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라는 전문 연주 단체의 길에 들어섰다. 세계적으로도 일본에 이어 두 번째 기타 오케스트라인 '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는 지금도 일본 큐슈 기타 페스티벌에 특별 초청되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으로 클래식 기타 애호가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박규희는 바로 이 과정에서 탄생한 '비르투오소'다. 일명 '딴따라 악기'로 취급받으며 기타라는 악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던 시절, 한 교사의 실험적 사고와 실천이 없었다면 커피콘서트에서의 감동은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인천시가 최근 '문전성시'를 빗대 '문화성시 인천'을 선포했다. '문화성시'는 공공부문이 주도하는 문화운동이다. 그러다 보니 문화관련 시설 등 하드웨어에 치중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민간의 문화자생력 측면에서 볼 때 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는 희귀한 성공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제2, 제3의 리여석 기타오케스트라가 탄생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문화자생력을 키우는 일, '문화성시'를 꿈꾸는 인천시가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다.

/임성훈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