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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스토리]중증외상환자 신속·집중치료 '권역외상센터'

무작정 가까운 병원만 찾다간 미로 안에서 헤맨다

골든타임, 가장 확실하게 생명 구하는 '응급 안전망'

가천대길병원 권역외상센터 관찰구역
이국종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이 응급환자 처치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아주대학교병원 제공

모든환자 '1시간 내' 도착 목표
2017년까지 전국 17개소 조성
24시간 대기 전문의·시설 갖춰
'국가 공인 1호' 가천대 길병원
닥터헬기 서해·충남까지 이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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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크게 다치면 어디로 가야 할까? 가장 가까운 병원? 또는 큰 병원? 정답은 둘 다 아니다. 수술실이 불시에 발생한 환자를 위해 항상 비워져 있지 않을뿐더러, 야간이나 휴일에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환자를 위해 외과의사가 항상 대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답은 외상전담 전문의들이 365일 24시간 대기하고 있고, 외상환자들을 위한 전용 수술실, 중환자실을 갖춘 '권역외상센터'로 가면 된다. 무조건 가까운 병원으로만 갈 경우 다시 큰 병원으로 전원(병원을 옮김)해야 할 수도 있고, 중증외상환자의 골든타임인 1시간을 넘긴다면 생존확률이 크게 떨어진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2년부터 권역외상센터 설치지원사업 추진 중에 있으며, 2017년까지 연차별로 총 17개 권역외상센터를 전국에 균형 배치해 중증외상환자가 전국 어디서나 1시간 이내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현재 전국의 권역외상센터는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경기·인천 권역의 외상센터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봤다.

가천대길병원 권역외상센터
가천대길병원 권역외상센터 모습. /가천대길병원 제공

# 권역외상센터란?

권역외상센터는 365일 24시간 교통사고, 추락 등에 의한 다발성 골절·출혈 등을 동반한 중증외상환자에 대해 병원도착 즉시 응급수술이 가능하고 최적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시설, 장비, 인력을 갖춘 외상전용 치료센터를 말한다.

이곳에서는 24시간 응급수술 준비체계 운영, 전용 중환자병상 가동 등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신속하고 집중적인 치료 제공하고 아울러 외상치료 전문인력 양성, 외상분야 연구, 외상통계 및 각종 데이터 생산 등을 담당한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우리나라 중증외상환자 진료체계에서 외상전용 중환자실과 외상전담 전문의사가 부족한 것이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파악하고, 2016년까지 약 2천억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해 중증외상환자 치료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매년 중증 외상환자가 10만여명이나 발생함에도 불구 우리나라는 그동안 중증외상 진료체계가 취약해 외상환자 '예방가능사망률(사망자 중 적정 진료를 받았을 경우 생존할 것으로 판단되는 사망자의 비율)'이 선진국에 비해 높은 상황이었다.

우리나라 외상환자의 예방가능 사망률은 35.2%로 미국과 일본(10~15%)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복지부는 우리나라 외상환자 예방가능 외상사망률을 20년까지 선진국 수준인 20% 미만으로 낮춘다는 목표로, 2012년부터 권역외상센터 설치 사업을 시행 중에 있다.

2012년 5개 기관을 권역외상센터로 선정한데 이어 지난해까지 15개 기관이 선정됐으며, 올해는 경남, 제주 2개 권역을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 추가로 2개소를 선정할 계획이다. ┃그래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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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천대 길병원 권역외상센터

가천대 길병원 권역외상센터는 국내에서 최초로 개설된 국가 공인 권역외상센터다. 지난 2012년 11월 권역외상센터로 선정된 후 2013년 12월 권역외상센터 시설을 완공했고, 이듬해 12월에는 외상집중치료실(외상환자 중환자실)을 개소했다.

또 같은 해 말에는 외상소생구역을 가동했다. 길병원 권역외상센터는 현재 외상전문의 10명, 외상전담 3개 팀이 참여해 24시간 운영되고 있다.

길병원은 향후 외상전담팀을 5개까지 늘릴 예정이다. 기존에는 외상 환자 등 모든 응급 환자가 응급의료센터(응급실) 출입구로 이송돼 응급실에서 처치를 받았지만, 권역외상센터 개소 이후에는 모든 과정이 싹 바뀌었다. 외상환자는 외상센터 출입구를 통해 곧바로 외상 전용 처치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가천대길병원 권역외상센터 소생실
가천대길병원 권역외상센터 소생실 내 수술실(왼쪽), 가천대길병원 권역외상센터 관찰구역. /가천대길병원 제공

외상센터 1층은 소생구역으로 소생실 2실, 외상관찰실 6병상, 소수술실, 외상전용 영상구역(엑스레이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3층 수술실에는 외상환자 전용 수술실 2개가 24시간 수술 대기 중이며, 5층 혈관조영실 1실도 외상환자 전용으로 마련됐다.

또 같은 층에 외상중환자실 20병상도 준비돼 있다. 10층은 외상환자 병동으로 50병상 이상이 외상환자 전용으로 운영된다. 중환자실, 병동 모두 응급구역(응급실 및 1층 외상 소생구역)을 통해 내원한 환자만 입원할 수 있다.

특히 권역외상센터가 개소하면서 길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 소아전용응급실, 닥터헬기 등 응급환자 진료를 위한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하게 됐다. 2012년부터 닥터헬기가 배치되면서 서해 도서지역과 수도권 고속도로 상에서 벌어지는 응급 환자 이송, 처치가 더욱 신속해졌다.

특히 서해안고속도로 행담도 휴게소를 인계점으로 한 충남권역 중증 환자들의 이송이 헬기 운항 전보다 활발해졌다. 길병원은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한 권역외상센터와 기존 응급시스템을 적절하게 활용해 한국형 응급 및 외상 치료 시스템을 선도하겠다는 각오다.

특히 권역외상센터가 외상 의료에 관한 연구 및 외상 의료 표준을 개발하고, 외상 의료 인력을 교육, 재난 의료지원 등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 지역 유관기관과의 사고 예방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정남 길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아직까지도 외상센터 하면 기존의 응급센터랑 어떻게 다른 것인지, 얼마나 다쳐야 외상센터로 가는지에 대해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권역외상센터는 시간을 다투는 '중증' 외상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며 "권역외상센터는 기존의 여러 진료과로 세분화 돼 전문성은 있지만 융합되지 못했던 단점을 보완한 시스템을 갖추었으며, 비록 선진국에 비해 늦게 시작했지만 앞으로 한국형 권역외상센터가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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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외상소생실의 모습. /아주대학교병원 제공

소파 겸 침대 놓인 사무실서 눈코 뜰새 없는 하루
이국종 교수와 둘이서 담당땐 1년에 4번 '집 구경'
빠른 시간 내 적절한 조치위해 책임제가 큰 도움
복지부 평가기준, 환자 소생 확률등 초점 맞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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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원 외상외과 교수
#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

"권역외상센터는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안전망입니다. 이제라도 그런 안전망이 생긴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은 너무 헐거워요. 좀 더 성기고 튼튼하게 만들려면 제도적 개선과 의사들의 인식개선이 필요해요."

지난 6월 정식 개소를 마친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이하 경기남부센터). 아주대학교 병원 응급실 맞은편에 멋들어진 별채가 세워졌지만 그 내부의 가치를 매기는 건 결코 멋이 아니다. 집무실인 듯, 자취방인 듯 정돈이 되지 않은 사무실에서 머리칼 한쪽이 쑥쑥 하게 뜬 정경원 외상외과 교수를 만났다.

소파에 놓인 쿠션과 담요는 이곳이 침대 기능도 겸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무실 벽은 정 교수의 가족사진으로 가득 메워졌다. 첫째부터 막내까지 12살 터울 난 4남매를 키우는 다복하고 행복한 가정이지만, 바쁜 아빠는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을 늘 가슴 한쪽에 두고 산다.

정 교수의 행색(?)이 방증하듯 외상센터 의사는 결코 만만한 자리가 아니다. 특히 경기남부센터는 대한민국에 외상센터의 필요성 자체를 만든 원조 격이다. '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을 구하며 '중증외상센터 설립을 위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일명 이국종 법)'을 만들어낸 이국종 교수가 이곳의 센터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원조라는 말이 모든 것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지만, 첫 걸음을 떼고 있는 중증외상 의료체계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경기남부센터의 책임은 무겁다. 그런데 경기남부센터가 지난 2012년 11월 복지부 선정 권역외상센터 1차 선정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은 다소 의아하다.

경기남부센터는 그 다음 해 실시한 권역외상센터 2차 공모에 재지원해 비로소 공식 지정을 받았다. 이런 부침을 겪은 원인이야 다양하겠지만, 그 속에는 이국종법을 근거로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권역외상센터 지정 기준안이, 정작 이 교수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소 상이했다는 점도 분명 작용했을 터다.

경기남부센터는 정식 개소일 기준으론 가장 최근에 생긴 '막내'지만, 외상센터의 기능으로만 따지면 이미 십수 년을 걸어온 베테랑이다. 처음엔 이 교수 혼자 역할을 담당하다가 정 교수가 합류하며 한동안 고작 둘이서 외상센터 업무를 담당했다. 이 시절이 정 교수에겐 집 구경을 1년에 겨우 4차례 남짓하던 고난의 때였다.

그런 노력이 빛을 본 걸까. 외상외과 5명, 응급의학과 1명, 정형외과 3명, 신경외과 1명, 마취과 1명, 영상의학과 1명으로 꾸려진 경기남부센터는 현재 경기도 권역은 물론 전체 환자의 20%를 타 권역에서 전원(轉院·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김)된 환자로 채울 정도로 명실공히 거점 병원이 됐다.

정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도 충청 권역인 태안에서 발생한 환자가 경기남부센터에 헬기로 이송돼 오기도 했다.

이런 결과 뒤에는 당직의의 책임제를 공고히 한 경기남부센터의 시스템이 있다. 중증외상환자가 도착하면 즉시 해당 당직 외상팀이 투입된다. 그 환자는 치료를 마칠 때까지 해당 당직의가 담당한다. 치료 전 의사들 간의 불필요한 논의 시간을 최소화하고 가장 이른 시간에 환자가 수술 등 적합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많을 경우 하루에 6~7명의 중증환자가 오니 의사들이 여유를 부릴 틈은 없다. 현재 경기남부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70여 명이다. 12명의 의료진 중 진단의를 제외한 당직 인원은 총 8명, 그중 수련 과정에 있는 2명을 제외하면 6명이 각각 10여 명의 환자를 나눠 관리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기본적인 훈련, 콘퍼런스, 회진과 당직, 또 의사로서 빼놓을 수 없는 연구 분야까지 수행해야 하니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예우는 좋은편이다. 정해진 사이클을 통해 의료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이면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치료가 시작되니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보다 40여 년 앞서 응급의료체계를 갖춘 미국 역시 이러한 방식을 스탠다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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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클릭아트

정 교수는 "국고 지원을 받는 만큼 그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일하지 않으면 쉬이 견디기 어려운 스케줄"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가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적절한 조치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식의 책임제가 큰 도움이 된다. 전문분야별 협업이 요구되는 경우 역시 당직의 전담 하에 필요한 부분을 요청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부분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세운 권역외상센터 운영지침은 이것과 약간 다르다. 전체 평가항목(100점 만점) 중 20점을 차지하는 '외상팀 활성화' 항목에 따르면 중증환자가 도착하면 외상의 종류와 관계없이 각 전공별 의사들이 소집돼 치료 부문을 나누도록 돼 있다.

그러나 예컨대 다리가 절단돼 촌각을 다투는 환자의 경우 주로 뇌 손상과 관련이 있는 신경외과 전문의의 소견을 거쳐야 하는 것은 불필요할 수 있다.

팀이 활성화돼 정확한 진단을 낸다는 명목은 좋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부분은 의료진의 정신적 부담을 지나치게 늘릴 뿐 아니라 환자의 치료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뿐만 아니라 의료진 간 책임 떠넘기기가 일어날 소지도 무시할 수 없다.

또 중증외상환자에 대한 기준을 세웠음에도 외상센터 운영 평가 시 중증환자 조치 수가 아니라 전체 외상환자의 조치 수를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도 현실과의 괴리가 있다. 외상센터는 의료진 수준과 설비도 중요하지만 그 핵심이 언제 발생할 지 모르는 환자에 대한 의료진의 상주 대기에 있다.

그런데 평가 잣대는 경중을 떠나 전체 외상환자 수에 맞춰져 있다 보니 의료진을 외상센터에 대기시키는 것을 인력낭비로 인식하는 병원이 늘고 있다. 심지어 외상센터 지정기준에 맞춰 구성한 인력에 잉여가 많다며 이들을 일반 외래진료에 활용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에 요청하는 병원도 생겨나는 실정이다.

이대로라면 국민의 생명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 지원이 눈먼 돈으로 전락하는 것도 시간 문제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외상센터가 이제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려는 단계다 보니 개선돼야 할 점이 많다. 보건복지부의 평가 기준을 현장 상황과 환자 소생 확률에 초점을 맞춰 바꿔 나가야 한다"며 "의료계 역시 권역외상센터가 놓쳐서는 안 될 국민 안전망임에 대한 인식을 한층 강화해 사명감을 갖고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회·김명호·권준우기자 ksh@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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