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 사업에 '잘려나가는' 지역 역사

인천시 '600년' 기념행사 이후
기초단체들 관련 사업 열 올려
"이름만 바꾼 해, 예산투입을…"
생일 대신 작명일 기념하는 꼴


인천시가 2013년 '인천(仁川)'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지 600년이 되는 해라면서 '정명(定名) 600년' 관련 각종 사업과 행사를 펼친 이후, 인천의 각 기초단체들이 이른바 '정명 기념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계양 정명 800년', '옹진 정명 1천 년' 등이 그것인데, '정명'이라는 말 자체가 도시가 생겨나 변천해온 역사를 단절시키는 오류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근 옹진군은 '옹진(甕津)'이라고 명명한 지 1천 년이 되는 해인 2018년을 기념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고려사'에 '현종 9년(1018년)에 현령을 두었다'며 옹진이란 지명이 처음 등장해 '정명'이 적어도 1천 년은 됐다는 게 옹진군이 내세우는 근거다.

하지만 옹진은 고구려 때부터 '옹천(甕遷)'으로 불리던 곳을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해 '옹진 정명 1천 년'은 오히려 지역의 역사를 축소하는 꼴이다.

조선 태종 13년(1413년) 어명에 따라 전국 여러 곳의 지명이 일제히 바뀌었는데, 문학산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인주(仁州)'도 이때 인천으로 이름이 고쳐졌다.

인천의 각 기초자치단체 '정명 사업'을 부추긴 것은 엉뚱하게도 인천시다. 인천시는 2013년 느닷없이 '정명 600년'을 선포하고, 인천선언문 채택, 600주년 기념비 설치, '정명 600년 기념 인천시사' 등 역사서 발간, 음악회, 학술대회 등 각종 기념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문학산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원(原)인천' 지역은 백제 때 미추홀(彌鄒忽), 고구려 때 매소홀(買召忽), 신라 때 소성현(邵城縣), 고려 때 경원부(慶源府), 조선 태조 때 인주로 지명 변천을 겪었다. 1413년 '인천'으로 개명했을 뿐 본래의 역사와 문화를 이어왔다.

계양구도 2015년 고려 고종 2년(1215년) '계양도호부(桂陽都護府)'라는 지명이 생긴 지 800년이 됐다면서 정명 기념사업을 진행했는데, 그 이전에는 '수주(樹州)' 등으로 불렸다.

'인천' '옹진' '계양'이라는 지역은 그 이름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실체는 그대로 이어져 오는데 단지 이름만 바꾼 시점을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굳이 기념하려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정명 사업'은 사람으로 치면 태어난 날인 생일은 제쳐 두고 작명소에 가서 이름을 지은 날을 '작명일'이라고 하여 따로 기념하는 경우와 같다고 지적한다.

지역학 연구자인 이호상 인천대 교수는 "과거 국가가 제도적으로 바꾼 지명의 나이가 얼마나 오래됐는지는 큰 의미가 없다"며 "정명 기념사업 등 지나가 버리면 끝나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역성을 어떻게 복원하고, 보존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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